'묵상 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3.09.16 믿음의 행위 by illbegoodtree
  2. 2013.09.02 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순종하지 못할까 by illbegoodtree
  3. 2013.08.30 바리새인의 오류 by illbegoodtree
  4. 2013.02.05 오직 내가 자랑할 것은 by illbegoodtree
  5. 2013.02.05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by illbegoodtree

믿음의 행위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3.09.16 06:46


좁은 길 (출처: blog.daum.net/pcdo4)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입술로만 하는 믿음은 거짓된 믿음이며 그에 걸맞는 행동이 따를 때 참다운 믿음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즉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라 하는데, 믿음에 따르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아직 저는 그 성경 말씀의 깊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믿음에 따르는 행위란 '마음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마음이 없다면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꼬박꼬박 지키고 집사 혹은 권사가 되었다고 해도 믿음에 따르는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또 날마다 봉사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선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에 따르는 행위를 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만약 겉으로 선한 행위를 하면서도 마음 속에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테니까요. 또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진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도 완벽하게 선한 삶을 살 수는 없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행위를 보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에 따르는 행위란 믿음에 걸맞는 '마음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행동으로는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지만 다시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함에 애통하는 마음, 가난하고 아프지만 믿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 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도 그런 마음보다는 제 안에 교만과 거짓과 가식들, 이웃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글우글 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꺼풀들이 벗겨지고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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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순종하지 못할까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3.09.02 10:11



Holy Spirit (출처: janethinderliter.blogspot.de)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왜 유대인들은 불순종의 길을 걸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며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된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고도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4-5)


인간의 마음이란 어떻게든 교묘한 방법으로 악한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나의 욕심을 위해 불편하거나 방해가 된다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그 말씀을 잊곤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씀은 누구나 듣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바보같은 짓 아닙니까?"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인간 마음의 교묘함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는 순간 바로 내가 욕심대로 방종하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태복음 15:8-10)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하고 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또한 말씀에 어긋난 나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서든지 합리화를 시킵니다.


'음란한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도 나의 약함을 다 이해해 주실거야. 

지금 좀 음란한 생각에 취하더라도 결국 용서해 주시겠지.'


이런 생각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하나님 여호와를 '나의 거듭된 죄를 쉽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리지요.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하고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 모든 나의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의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4-5)


사랑과 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랑 뒤에는 의(義)가 있고 의(義) 뒤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로마서 8:26)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인데, 나에게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령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좀 더 직감적으로 비유해 보자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에게 전속 비서를 보내서 항상 곁에 있게 하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대통령의 권한으로 채워준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어찌 큰 사랑이 아닐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고통을 겪고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성령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고 그 이상의 것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주님의 평안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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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의 오류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3.08.30 14:18


바리새인들 (출처: godsay.tistory.com)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2-4)


주일예배 때마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수많은 성도들에게 전해지는데 어찌 이리도 꼭 나만을 위해 주시는 말씀 같은지요. 사실 나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다”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심각한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렇게 내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우둔해서 남의 티끌만한 죄는 빈틈없이 잡아내면서, 나의 남산만한 죄는 쉽게 망각해 버리고 심지어 언제 그런 죄가 있었냐는 듯이 살아갑니다. 나의 작은 선행이나 자랑거리는 은근히 온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나의 부끄러운 죄악들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기는 데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지요. 바로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2장의 말씀은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니 금방 용서해 주시겠지. 다시 열심히 살아가면 되겠지’라는 지극히 간단한 생각으로 속전속결로 해결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같은 죄를 다시 짓곤 하지요.


과연 내가 진정으로 회개를 한 것이었을까요?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리라는 생각 때문에 어떠한 죄를 지어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요? 아마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보기에도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그들 마음 속에는 이기심과 악함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그들의 지식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정작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가 그러한 바리새인의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2장 3절과 4절의 표현대로, 나의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 생각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믿는 어떠한 진정함도 없었고, 엄밀히 말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전혀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시편 50:21)


예수님께서 오셔서 바리새인들의 죄악을 하나 하나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적으로 살아간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안의 죄악을 버리는 것 대신에 진리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 안의 죄악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정하되 성경 안에 고이 모셔두었지요. 예수님은 그저 문자 안에서만 존재하는 분이었고, 내 삶 속에 끼어들 여지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삶 가운데 그 분의 말씀은 구원자이기는 커녕 웃음을 주는 유머 동영상보다도 듣기에 귀찮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미래를 멋지게 예비해 두셨음을 믿어”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행동은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없는 사람 같았고 장래에 대해서 노심초사하며 불안해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삶을 멋지게 예비해 두셨을까? 보라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어. 인생은 그저 그런거야.’ 이런 속삭임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함을 깨닫습니다. 기도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 고요함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사탄은 나로 하여금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 죄를 짓는 생각을 계속 짓도록 부추깁니다. 어떻게 그런 사탄의 공격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성령이 내 마음 안에 충만하다면 그러한 사탄의 속삭임에 쉽게 흔들리지 않겠지요.


이제 제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고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는 영혼으로 변화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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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내가 자랑할 것은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3.02.05 03:26


십자가 (출처: boshow.com)


세상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기를
세상이 보여주는 영광에 눈을 감기를
세상의 즐거움을 노래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에만 귀를 활짝 열도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에만 눈을 뜨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갖도록 이끄소서.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자.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우리는 이미 세상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더 이상 세상에서의 성공이 필요하지도 않고 세속적 성공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고 비교한다. 그러나 속지 말라! 평가와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마음 속에는 교만과 욕심이 가득하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더 이상 평가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 않다.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요 그것만이 나의 참 기쁨이요 소망이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네가 최고가 될 자신감이 없으니 예수님의 그늘 안에 도피하여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행동 아닌가?" 그러나, 나는 다시 대답할 것이다. "나에게 최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일 뿐입니다. 그것이 최고인데, 무엇이 도피이며 무엇이 합리화란 말입니까?" 이 세상이 나를 비웃더라도 나에게는 오직 십자가가 최고일 뿐, 이에 버금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썩어 없어질 것이며 영원한 생명에 비할 바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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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3.02.05 03:22

그리스도인은 목사나 선교사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면서 일정 시간만 하나님의 일에 투자하는 평신도가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평신도라고 할 수 있지요. I'll Be Good Tree도 어떻게 하면 평신도가 목사나 선교사 못지 않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를 함께 고민하고 이에 관한 간증을 나누는데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평신도가 사회에서 일할 때, 간혹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직업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고가 되려는 건 개인적인 명예욕일지도 모르잖아요. 최고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는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요?" 
이것은 사실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출처: Jejusori.net)


요즘 음악계에서 떠오르는 샛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양은 최근 '크리스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를 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해 하고 또 물어온다면, 당당히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꿈은 사회에서의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꿈입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녀의 꿈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요.

박지혜양의 인터뷰는 제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직업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장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또는 '명예욕으로 이 일을 하느니, 일은 적당히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성경모임과 선교에 더 열심히 참여하자'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지혜양은 정반대로 자신의 일에서 최고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박지혜 양의 사례와 함께 성경의 한 장면도 문득 떠오릅니다. 베드로(당시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는 원래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호수에서 하루종일 고기를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단 한마리도 잡히질 않았습니다. 머리 속에는 병든 어머니와 고생하는 가족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옆에 예수님과 추종자들이 설교를 하러 왔지만,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 보다는 온갖 걱정거리로 가득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로 시몬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시몬에게 그물을 들고 고기를 잡으러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은 의아해 했지만, 말씀대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다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수많은 고기가 잡혔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고기잡는 시몬 (출처: headforart.com)


시몬은 이제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직업적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물을 던지자 마자 순식간에 엄청난 수확을 했으니, 그의 능력을 인정받을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울면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무엇이 죄였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고기를 잡는데 자기 힘에 의지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힘에 의지하지 않은 죄일 것입니다.

박지혜양의 인터뷰와 시몬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직업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차츰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그리스도인에게 '최고'는 남들과 비교해서 우수한 인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내가 직장에서 얻은 성과를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은혜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시몬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몬과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직접 두눈으로 보고 체험했을 때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 보다는 그 엄청난 권능에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누가복음 5:10)

이 말씀을 듣고, 시몬은 자신의 배와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셨던 것은 단지 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해야 할 사명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자신의 모든 직업적 성공을 버려둔 채, 진정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낚는 어부 대신에, 그냥 고기 낚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거잖아. 다음 번에는 더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을까?'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추측일 뿐이지만) 예수님께서 이적을 보이기 전에 시몬이 하루종일 고기를 잡지 못했던 것도 주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큰 그릇으로 쓰시기 위해서 때로는 직업에서의 실패를, 때로는 직업에서의 성공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업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든 풀리지 않든, 최고이든 그렇지 않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일 것입니다. 



정진호 교수 (출처: netzealand.com)


또한, 시몬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직장에서 최고가 되어 큰 명예를 누릴 때 어느 순간 그 모든 명예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KOSTA 강사인 정진호 교수는 미국 유학시절 NASA에서 최고의 조건으로 일자리를 주었지만, 한국의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그 제안을 마다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국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사명으로 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직장에서의 성공도 주시고 실패도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의 성공과 '최고'가 되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이유지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직장에서의 성공과 자신의 명예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 그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최고'라는 개념은 사회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비신자들에게 '최고'는 남들보다 뛰어난, 감히 남들이 넘보지 못할 우수한 재능이나 재주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최고'임을 판별하는 주체는 일반 대중이나 전문가들이 되겠지요. 반면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란 자신의 일을 할 때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결실 - 복음과 하나님의 평강과 사랑을 전하고 주위의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실을 많이 맺었으냐에 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임을 판별하는 주체는 마땅히 '하나님'이시지요. 일반 사회에서 '최고'는 오직 소수의 그룹만이 선택받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에게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약하고 어리석고 버림받은 사람을 크게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뛰어난 재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 사회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사람보다, 하나님은 오히려 재능이 없는 사람, 사회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서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실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건 없건 간에 하나님 앞에서 모두 참다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최고란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최고'가 아니라, 오직 참다운 신앙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최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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