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4.09 예수천국 불신지옥 by illbegoodtree
  2. 2011.03.26 지옥의 문 앞에 선 크리스찬 by illbegoodtree
  3. 2011.03.09 진정한 사랑 by illbegoodtree
  4. 2011.02.22 행복은 곧 믿음이다 by illbegoodtree
  5. 2011.02.20 믿음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람, 바울 by illbegoodtree

예수천국 불신지옥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1.04.09 13:4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출처: Kepa)



최근 며칠 동안 내 마음은 매우 무겁고 힘들었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큰 힘과 용기를 얻었지만,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내 마음은 다시 영적인 전쟁에 휩싸였다. 우선, 최근 전개되고 있는 많은 신학적 논쟁들이 나를 괴롭혔다. 롭 벨(Rob Bell) 목사가 말한 것처럼 '지옥은 없으며 인간은 죽어서 모두 천국으로 가는 것'일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이교도들은 지옥에 가는 것일까?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에 가는 것일까?

이러한 신앙적 질문 뿐만 아니라, 몇몇 주위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성공과 명예와 부귀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자랑하기를 즐겨했다. 어떤 이웃은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자신이 직장에서 얻은 성과를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기 바빴고, 어떤 이웃은 자기 가족이 큰 상을 받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그들 속에 있다보면 나 역시 왠지 모를 압박감 속에 사로잡혔고, 하루라도 더 빨리 성공과 명예와 부귀를 위해 내달려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혀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하나님을 다시 잊어버렸고 그냥 자신을 내버려두기 시작했다. 정욕, 미움, 질투, 시기 같은 감정같은 여러 가지 악한 마음들이 이전보다도 더 강하게 나를 흔들어 놓았다.

영적 전쟁에 시달렸던 참으로 부끄러운 한 주였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마음은 오히려 더욱 담대해졌다. 사실 나는 예전에 '비록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구원론자였다. 타 종교와의 불화를 조장하는 기독교의 편협성을 가장 증오하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 한 주간의 영적 전쟁과 묵상을 통해서 내가 내리게 된 결론은 놀랍게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나 역시 믿기 전에는 구역질 날 정도로 듣기 싫었던 말 아니었던가?

조엘 오스틴(Joel Osteen)같은 온건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누가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할 일입니다. 오직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우리의 친구입니다." 사실 나도 아주 오랫동안 이러한 온건한 견해를 가져왔다. 불교, 이슬람 등의 타 종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참된 종교가 아니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라고 여겼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12~21)
예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그러므로 결론은 아주 단순해진다.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선하게 살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던가!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저 입술로만 예수를 시인하고 믿는다고 고백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마음 속에는 온갖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악을 서슴없이 행한다면,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에 불과하다.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내 모든 것을 모조리 버리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고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면, 그가 섬기는 예수는 무엇인가? 아마도 나를 성공하게 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 주는 슈퍼맨같은 예수일 것이다. 그런 예수님이라면 누구라도 믿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천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시는 그런 슈퍼맨이 아니셨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나무 왕관을 쓰시고 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복음을 선포하셨다.

지금까지 우리가 슈퍼맨같은 예수를 믿었다면, 갈기갈기 찢어서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자.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참으로 죄에서 구원하게 해 주시며 자유롭게 해 주시는 참된 예수님을 믿고, 그 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믿자. 주님은 우리에게 성공과 부귀가 아니라 처절한 고난을 주신다.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기 위해서. 그 고난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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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 앞에 선 크리스찬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1.03.26 23:27



며칠 전 폴 워셔(Paul Washer) 목사에 관한 글(2011/03/24 - 폴 워셔, 영원을 위해 사십시오!)을 쓴 적이 있다. 애원하는 듯한 설교, 다소 과격한 말투와 몸짓... 처음에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그의 말투와 행동들이 이제는 내 가슴에 큰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과연 예수를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모두 천국에 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같은 크리스찬이라도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다만 천국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선하게 살았던 사람은 더 높은 등급의 천국에 갈 것이요, 악하게 살았던 크리스찬은 비록 낮은 등급이지만 그래도 천국에 갈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예수를 진정으로 믿으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나도 믿는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예수를 참되게 믿고 있다는 착각이다. "나는 세례도 받았고 주님을 오랫동안 믿었느니 천국에 가는 티켓을 확실히 갖고 있음을 굳게 믿어. 나는 천국에 반드시 갈 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세례를 받은 후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로마서 8장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자세히 그 말씀을 뜯어 보자. '정죄함이 없는', 즉 심판을 받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여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례를 받으면, 혹은 정기적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회 사역에 열심히 봉사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선교사나 목사로서 일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즉 크리스찬 모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얼마 동안 묵상한 후에 나는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교회 예배에 열심히 참석한다고 해서, 집사나 권사가 되었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48~50)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세례는 천국에 가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죽을 때까지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지 않는다면, 온 몸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정성의 노력을 계속 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듯 우리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폴 워셔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도, 하나님께 다가가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거역했을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았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죄 짓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을 것입니다.

'내가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저는 열심히 교회 봉사도 하고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자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그런데, 우리가 천국의 문을 두드릴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폴 워셔는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길 원했기 때문에 크리스찬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사상가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안에 초대하기만 하면 확실히 거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책 어디를 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길 원했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칼빈주의(Calvinism)의 대표적인 교리 중의 하나이다.[각주:1] 칼빈주의 전통에 의하면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게 되는 '무조건적인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이며, '저항할 수 없는 은총' (Irresistable Grace)에 의해서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교리를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이 원하셔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어떠한 죄를 지어도 나는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폴 워셔는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죄의 회개를 통해서만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하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만 사랑하십시오.
거룩함 속에서 성장하고, 세상적인 것을 멀리하며 무늬만 크리스찬이 아닌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는 크리스찬이 되기를 갈망하십시오.


내 곁에 오신 예수님 (출처: RPM Ministries)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우리가 진심을 다하여 나아가야 얻게 되는 자발적 선택(Voluntary election)이며, 구원은 믿음, 회개, 사랑, 거룩함 속의 성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전세계에는 예수를 믿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리스찬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곳까지 누비며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은데 왜 세상은 아직도 천국과 같지 않은가? 전쟁과 증오와 죄악이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욱 활개치고 있다.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단 1%만 있다고 해도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욱 나아지지 않았을까?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이 기뻐하는 참된 사도는 아마도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예수님이 기뻐하는 참된 제자일까? 결코 결코 아니다. 나는 죄악의 술에 취해 있으며, 교만과 정욕으로 날마나 씨름하고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인 중의 죄인이다. 폴 워셔가 호소했던 것처럼 깨어나고 싶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주님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기쁨이 되고 싶다.

  1.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a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으로 요약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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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1.03.09 01:41

사랑의 싹 (출처: 호평교회)



고린도전서 13장은 아마도 성경의 모든 부분 중에서 내 가슴 속에 큰 감동을 주는 가장 극적인 말씀이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람이 그토록 구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love)'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청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간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그토록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임에도 도대체 무엇인지 참으로 알기 어렵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게 알기 어려운 '사랑'이란 어떠한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변으로 진리를 말할지라도, 아무리 큰 지혜와 남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도,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결정적인 것은, 내가 아무리 내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이웃에서 봉사하고 헌신할지라도,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또한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된다.

가령, 교리의 문제로 교파가 갈라지거나, 예수를 믿는 종파끼리 서로 다투는 일들은 거기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복지에 많은 기여를 하고,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가장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교만와 위선으로 가득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태석 신부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러 갔을 때, 처음에는 주민들의 병과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오래 지내면서 차츰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함께 있어주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을 더욱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후부터는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리 그럴 듯한 교리로 무장한 종교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가장 단순한 교리를 가진 종교일지라도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라면 세상의 빛이 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인내, 온유, 시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지 않음, 불의를 싫어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 참음, 온전한 믿음과 소망 등이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참으로, 이와 같은 사랑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면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그런 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가 '믿음'만 강조하는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인 동시에, '사랑'의 종교이다.[각주:1]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사랑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요, 믿음이 없는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나날이 깨닫게 된다. 고린도전서에서 말한 그 사랑을 완전히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값 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고,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서조차 기도하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묵상해 본다. 주님의 말씀은 길을 잃고 헤매이던 우리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였고, 주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이웃과 그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아직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조금씩 그 길로 나아가고 싶다. 그 진정한 사랑이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숨쉬어 사랑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1. 혹자는 개신교는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가톨릭은 믿음 뿐만 아니라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해이다. 본질적으로 믿음과 실천적 행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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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곧 믿음이다

단상 노트 / illbegoodtree 2011.02.22 18:16

잔을 따르는 마음 (사진 출처: 꿈속의여인-세라쟈드)



요즘 믿음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묵상하고 있다. 바울의 삶(2011/02/20 - 믿음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람, 바울 참조)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성경에서도 믿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불교나 유교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보면, 믿음은 틀림없이 자명한 진리일 것이다. 오늘은 성경 대신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청년 시절 이 법구경을 자주 갖고 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 뒤에는 슬픔이 따라오기 마련. 수레바퀴가 마부의 뒤를 따르듯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행복이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마치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출처: 대구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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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람, 바울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1.02.20 17:5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서 1:12-13)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를 회고하면서 빌립보의 교우들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바울은 로마 전도라는 큰 사명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로마에 갔을 때는 수년간을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어찌보면, 한치 앞날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적인 상황을 도리어 기회로 이용했다. 자신을 감시하던 로마인들에게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고, 이것이 결국 로마의 귀족들에게 복음이 먼저 전하여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로마가 훗날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게 된 것은 귀족의 복음화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바울 한 사람의 믿음이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의 전도

로마에서 바울의 전도 (출처: AG)



진정한 믿음은 이렇듯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꾼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고, 불화를 화목으로 바꾸며,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가 있게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인재는 수학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한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오직 감사하였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줄을 알았으며, 그 사명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의 경력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고 토로하였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 일에 쓰임이 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갔다. 폭풍도, 박해도, 병고도, 세상의 유혹도, 그 무엇도 그의 믿음을 막지 못했다.

우리는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인간의 육체는 매우 나약하기에 그지 없지만, 인간의 영혼은 우주보다도 더 강할 수 있다. 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며, 결국에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라고 생각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믿음으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꿔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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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믿음,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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