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교회'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1.09.12 절망아 안녕, 하나님을 찬송하라 by illbegoodtree
  2. 2011.09.10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였던 삼손 by illbegoodtree
  3. 2011.09.09 고난을 딛고 성공한 길르앗 용사의 이야기 by illbegoodtree
  4. 2011.09.08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by illbegoodtree
  5. 2011.09.07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by illbegoodtree

절망아 안녕, 하나님을 찬송하라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12 12:46

하나님을 찬송하는 다윗 (출처: Naver Blog 사이버 사랑행복나눔 캠페인)



□ 오늘의 말씀은 시편 42장입니다.

시편 42장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낙심과 절망적인 심정을 하나님께 고백한 글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때 시기, 질투, 교만, 음란, 두려움 같은 여러 무기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입니다. 낙심이 깊어지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시편 42:3,10)

다윗은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롱에 크게 낙담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낙심의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엘리야도 바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이세벨이 사신을 보내 "너도 내가 죽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에 엘리야의 낙심이 깊어져 결국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토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곳에 있는 어느 굴에 들어가 그 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여, 나는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와 맺은 계약을 어기고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고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들은 나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열왕기상 19:9~10)

이처럼 말은 멀리서도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덕을 세우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나의 믿음과 신앙을 무너뜨리는 소리에 귀를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42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영혼', '나' 등과 같은 나를 지칭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가 낙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내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도 다윗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련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랜 광야생활에 지친 백성들로부터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이 들끓자, 모세는 하나님께 "어찌 저 백성을 내게 맡기셨나이까. 차라리 저를 죽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모든 백성이 자기들의 천막 문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여호와께서 몹시 노하시므로 모세가 괴로워하다가
여호와께 이렇게 말하였다. “어째서 주의 종에게 이런 괴로움을 주십니까? 어째서 내가 주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지 않으시고 이 백성의 짐을 나에게 지우셨습니까?
그들이 나의 자녀들입니까? 내가 그들의 아버지라도 됩니까? 어째서 나에게 유모가 젖 먹는 아기를 품듯 이 백성을 품고 그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이 모든 백성이 먹을 고기를 내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이 백성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거워 나 혼자서는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길입니다!”
(민수기 11:10~15)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믿음이 흔들리곤 하였지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고요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바로 곁에 계신데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두려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닌 능력의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날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군중을 남겨 두고 예수님
이 타신 배로 함께 떠났고 다른 배들도 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폭풍이 휘몰아치고 파도가 덮쳐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의 뒷 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하고 소리쳤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이 멎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4:35~40)

모택동 통치시절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는 참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목사님이 공안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예수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영적인 고통속에 하루하루를 보며 날마다 두통에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힌 팜플렛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내가 베드로입니다. 날 사랑하신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는 다시 공안에 끌려갔고 수십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노인이 되어 출감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에 감옥에서의 삶은 참으로 평안하였습니다."

자, 다시 시편으로 돌아가 봅시다. 다윗은 이처럼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크게 낙심하였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낙심하게 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로써 비참한 상황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이처럼 우리는 찬송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상황에서 자신을 비관하고 낙심할 때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해 주신 큰 미래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을 때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네가 말하고 행한대로 너에게 행하겠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10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러나 거인들이 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큰 두려움에 떨며 통곡을 하였고 급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였고 수십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거인들의 위력에 압도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갔더라면, 그들은 수십년을 허송세월하지 않고 더 일찍 기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 악한 백성이 언제까지 나에게 불평할 것인가? 나는 이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너희는 그들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 말대로 해 주겠다.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불평하였으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나를 원망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약속한 땅에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녀들이 사로잡혀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나는 그들을 인도하여 너희가 거절한 땅으로 들어가 살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불신한 너희 죄 때문에 너희 자녀들은 너희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을 탐지하는 데 소요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너희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거절한 결과가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분명히 말하지만 함께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백성에게 내가 말한 것을 반드시 행하겠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다 죽어 없어질 것이다.”
(민수기 14:26~35)

이와 달리,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선두에 선 것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그들을 이끌었고 결국 그 단단해보이던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아갔기에,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7명의 제사장들이 각자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법궤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무장한 선두 부대는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 앞에 서고 후방 부대는 법궤 뒤에서 행군했으며 나팔 소리는 계속 울려퍼졌다.
(여호수아 6:8~9)

다윗처럼, 곤궁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내가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 피터슨(John Peterson)의 유명한 고백으로 오늘 하루를 주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시작합시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 다니, 「설교 - 너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12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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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였던 삼손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10 07:33



삼손과 데릴라 - 루벤스 작 (1609) (출처: Naver Blog Jinifox)



□ 오늘의 말씀은 사사기 14:1~9입니다.

머리털에 엄청난 비밀을 가진 삼손은 출생의 예고를 받고 영웅처럼 살았지만, 하나님의 기대와 다른 길을 걸었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사기 14장에는 그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삼손은 딤나로 내려가 거기서 어떤 블레셋 처녀를 보고 돌아와서 자기 부모에게 그 처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네 친척이나 동족 가운데 여자가 없어서 네가 이방 민족인 블레셋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느냐?” 하고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삼손은 아버지에게 “나를 위해 그 여자를 데려오십시오. 그녀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여자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사기 14:1~3)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서 '내려갔다'는 표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반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등의 구절에서 보듯이, '올라간다'는 표현은 '은혜의 자리로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삼손의 첫번째 실수는 가서는 안될 유혹의 장소로 간 것입니다. 유혹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사를 할 때에도 가급적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는 자리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삼손은 특히 여자에게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매력적인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그의 습성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지요. 그는 딤나에서 블레셋 여자를 만났고 그를 아내로 삼기로 부모에게 청하였습니다. 그가 딤나에서 블레셋 여자를 만난 것은 패가망신의 시작이었습니다. 시편에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부잣집만 털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었던 대도 조세형은 감옥에서 회심하여 하나님을 믿었으나, 주위 사람들과의 사귐이 건전하지 못하여 다시 도둑질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죄악의 습성은 강한 흡수성과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바로 서 있는 사람, 존경할만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부모에게 청원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첫번째 경고였지만, 그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결국 부모와 함께 블레셋에 내려갔습니다. 그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어린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두번째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자를 물리치고 여자를 만나 기뻐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경고를 모두 무시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결국 그가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어느 야구선수가 어느 프로야구단에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큰 교통사고가 나서 타고 있던 차가 굴러버리고 말았습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자신만 멀쩡하였고 택시를 타고 바로 테스트 장소까지 갔다고 합니다. 테스트에 합격한 후, 그의 삶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삶을 한 순간도 헛되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소중한 깨달음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깨달음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유혹의 장소에 단호히 가지 않고 영적 교제를 더욱 나누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10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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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딛고 성공한 길르앗 용사의 이야기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09 07:38



□ 오늘의 말씀은 사사기 11:1~11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회의 뚜껑이 열려도 날라가지 못하는 불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까닭입니다. 어느 역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큰 업적을 남긴 많은 인물들의 과거는 대부분 매우 불행하였으나 그들은 결국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였고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길르앗 사람 입다도 매우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윤락녀의 아들로 태어나 무시와 천대를 받고 어릴 때 집안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백수, 건달, 불량배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세월이 지나 길르앗 자손들이 입다를 장관으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로 볼 때 그는 큰 실력을 쌓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후에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길르앗 지도자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암몬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는데 당신이 우리의 사령관이 되어 주시오.”
(사사기 11:4~6)

집에서 쫓겨나는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실력을 쌓아 성공한 입다의 이야기는 요셉과 닮은 면이 있습니다. 요셉도 형제로부터 쫓겨나 종살이를 하다가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크게 쓰시기 위함입니다. 비록 지금 하는 일이 당장 하나님의 쓰임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나의 일에 충실하여 실력을 쌓게 되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큰 쓰임이 되기 위한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입다는 또한 관용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쫓아낸 당사자들이 이제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부족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입다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길르앗을 구하기 위해 그들이 장관이 되기를 수락하였습니다. 원수를 돕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움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참다운 신앙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가 되지 않고 악한 것이 우리의 마음을 틈타게 됩니다.

예수님 (출처: Daum Blog 마라나타)


입다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원수에게도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길르앗의 장관직을 수락하기 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물었고, 장관직을 수락한 후에도 하나님께 고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당신들이 나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서 암몬 사람들과 싸우게 하고 또 여호와께서 나에게 승리를 주신다면 내가 진짜 당신들의 통치자가 되는 겁니까?” (사사기 11:9)
그래서 입다는 길르앗 지도자들을 따라갔고 그 곳 백성들은 그를 통치자와 사령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입다는 미스바에서 그 계약 조건을 모두 여호와께 말씀드렸다. (사사기 11:11)

어느 신학교에 유학의 꿈을 가진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은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다른 청년은 발로 뛰며 모금활동을 하였습니다. 1년이 지난 후, 기도한 청년은 교수의 추천으로 덴마크에 장학생으로 유학가게 되었고, 다른 청년은 모금활동을 그때까지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길르앗 용사 입다처럼 어떠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에게 쓰임받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9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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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08 07:39



열매 맺는 나무 (출처: 대구침산교회)



□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25:14~30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고 아내를 괴롭히고 구타하였습니다. 이런 괴롭힘과 구타가 무려 10년간이나 지속되자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이혼하고 교회에서 사역자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족들은 지하교회에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하면서도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믿음대로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우리의 게으른 신앙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충성된 종과 충성되지 못한 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주인이 다른 나라에 떠나기 전에 세 종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깁니다.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종인 우리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깁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재능, 물질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가 잠시 점유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비난을 받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참된 청지기인지 아닌지 드러납니다. 주인의 마음을 생각하며 비난을 잘 견디는 종이 참된 종일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제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 하였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제게 두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 하였다.
(마태복음 25:22~23)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두 종은 잘 관리하여 주인이 돌아올 때 두 배로 불려 각각 10달란트, 4달란트를 주인에게 드렸습니다. 이에 주인은 "네가 작은 일에도 충성하였다"고 말하며 칭찬합니다. 두 배로 불려 결실을 맺은 것이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것은 '두 배'라는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충성'되었느냐에 있습니다. 두 종의 결실은 각각 10달란트, 4달란트로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주인은 두 종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칭찬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큰 재능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적은 재능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받은 달란트의 크고 작음을 떠나, 또한 결실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는 충성된 삶,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이 심고 뿌려 놓은 것을 거둬들이는 지독한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워서 주인님의 돈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가져왔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돈이 여기 있습니다’ 하였다.
그때 주인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알았느냐?
그렇다면 내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내가 돌아왔을 때 이자와 원금을 함께 받도록 했어야 하지 않느냐?
그가 가진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마태복음 25:24~28)

앞서 두 종과 달리 1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올 때 고스란히 그대로 드립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비난하며 "그 1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주인의 반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는 것은 '악'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거기에 감사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 그 선물 자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요. 사실 그 선물 속에 담긴 그 분의 마음과 따뜻한 사랑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선물받았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하나님의 나를 향한 무한한 사랑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그 은혜를 평생 기억하며 보은하기를 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적은 것이라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바로 내게 주어진 것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넘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다.’
(마태복음 25:29~30)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앞으로 계속 될 것이라고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더욱 풍족하게 되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는 자는 있는 달란트조차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어느 유명대학 성악가가 교회를 나오면서도 신앙이 부족하다보니 찬양 사역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결혼 축하연 등에서 축가는 잘 부르러 다녔는데 이는 사례금을 챙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목이 이상해져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고, 그제서야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목사님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된 삶을 살았는지 평가받게 됩니다. 그 결과는 두 가지,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주님!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달란트로 주님의 쓰임이 되길 원하오며 더욱 큰 열매를 맺길 원합니다. 주님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8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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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07 07:47



돌아온 탕자 (출처: 김승목사 블로그)



□ 오늘의 말씀은 누가복음 15:11~32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하여 방탕하게 살다가 궁핍하게 되자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크게 꾸짖으며 호통을 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입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기고 서서 기다리기 힘들어 달려가 끌어 안았습니다. 또,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18~24)

우리는 탕자였던 이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참다운 회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라는 고백에서 볼 수 있듯이, 참다운 회개는 죄를 범한 피해자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피해를 입힌 상대방에게는 전혀 사과하지 않는 것은 참다운 회개가 아닙니다.

탕자의 돌아옴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열었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다가 세상의 유혹에 걸려 넘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수한 '노란 손수건'을 걸어 놓고요.

미국 플로리다해변으로 향하는 버스안은 바캉스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 틈에 한 중년의 사나이가 몸을 잔뜩 움츠린채 앉아 있었다. 허술한 옷과 덥수룩한 수염과 굳게 닫힌 입술….소녀가 사나이에게 접근해 어렵게 대화를 시작했다. 사내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뉴욕 교도소에서 4년 동안 복역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아내가 나를 맞아줄 것인지 불안하오.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소. 오늘 출소할 것인데 나를 받아주겠다면 집 앞의 커다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놓으라고 했소. 만약 노란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이오."
승객들은 모두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버스가 마을에 이르자 승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참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탄성을 질렀다. 수 백개의 노란 손수건이 환영의 깃발처럼 참나무에서 춤추고 있었다.
- 피트 하밀(Pete Hamill)의 소설 '노란 손수건' 중

그런데, 맏아들은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합니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위해 일했는데, 도리어 재산을 탕진하고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동생을 더욱 환대하는 모습에 분노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0~32)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또한, 맏아들은 동생을 배려하기 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웃을 돌보지 못한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모든 결정이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이웃이며, 마지막이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와 큰 환대를 받은 것처럼, 심령이 가난해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이미 맏아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한 큰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 둘째 아들처럼 죄에 넘어졌을 때 진정으로 회개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또한,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을 믿고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기 보다 묵묵히 복음을 전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소망합니다.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7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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