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22 우주는 과학법칙의 구현일까: 스티븐 호킹의 과학철학 비판 by illbegoodtree
  2. 2010.08.21 인격주의적 종교이해 by illbegoodtree
  3. 2009.12.25 행복한 크리스마스 by illbegoodtree

우주는 과학법칙의 구현일까: 스티븐 호킹의 과학철학 비판

신앙과 과학 / illbegoodtree 2010.08.22 22:14

신을 자연 법칙의 구현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자연 법칙의 구현’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는 인격적 대상으로 신을 간주해 왔다. 어마어마한 우주 안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미약하고 우연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런 관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랙홀(Black Hole) 등 천체물리학에 큰 진보를 이루어내었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 박사가 2010년 6월 미국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에 대한 기고문에서도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서 "외계인과의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호킹 박사의 발언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출처: Astronomy.com Blog


호킹 박사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존경하던 과학자이다. 그가 제기하였던 "나는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라는 의문은 내게도 중요한 과제였다. 그는 과학이 그러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정말 그러할까? 과학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과학은 진리를 더 많이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미지의 세계를 더 많이 보여주게 될 것이다. 과학은 진리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진리의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우상과도 같았던 호킹 박사가 과학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우주 안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미약하고 우연한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의 견해대로 우주가 과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인간의 존재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태초부터 신의 철저한 계획 아래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인간 각자가 거대한 우주에서 그저 우연히 존재하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없다. 우주의 신비에 대한 매료되었던 어린 시절, 나의 존재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가슴 벅찬 믿음 때문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세상과 나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과학법칙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신은 사랑과 정성으로 세상을 움직이며, 그것은 과학법칙보다 우주를 지배하는 더 큰 상위의 법칙이다. 과학자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는 과학적 잣대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오직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야 그러한 법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기억해 두자.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 1941년 "Science, Philosophy and Religion: a Symposium" 심포지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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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주의적 종교이해

묵상 에세이 / illbegoodtree 2010.08.21 22:48


내가 처음 종교를 접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어머님을 따라 성당을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떠오르는 것은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보던 일, 성당 벽에 장식되어 있던 모자이크 그림들,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조각들, 성모 마리아 상...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때는 내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가곤 했던 것 뿐이었다.
 
그 후 이사를 하게 되면서, 성당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분명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주관하고 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곧잘 명상에 빠지곤 하였는데, 우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카톨릭이라는 범주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어떠한 종교적 신앙도 갖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에 대해서 명상하고 기도하곤 했다. 나의 하느님 신앙은 자연과학에 대한 순수한 감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동양사상, 불교 사상 등에도 관심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하느님 신앙은 이러한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관심을 포기하여야만 한다는 것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겐 이 모든 사상들이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신앙적 전통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종교전통을 부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의문을 가지곤 했다.
 
그러던 중, 대학에 진학하면서 당시 서강대학교에 개설되어 있던 종교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종교학과가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만 개설되어 있고, 다행히 나는 훌륭한 교수님의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학 수업을 처음 듣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자연과학의 이해범주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여 주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신학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면, 종교학은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역사적 관점 등의 인문학적 관점에서 종교현상의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서강대학교 길희성 교수(Harvard University, Ph.D.)의 말씀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학적 지성은 개방적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하며, 신학과 세속적 지성 사이에서 제 3의 길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상대의 입장에 서서 연구하는 것이며, 접근방식은 대화적 접근방식과 인간주의적 접근방식이어야 한다."
길희성 교수의 강의는 내게 종교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침을 제시하여 주었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은 문화의 기반이 종교적 지배로부터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자신의 독자적 기준에 따라 운동하게 되는 세속화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문제가 국제적인 분쟁이나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는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직도 여전히 종교적인 문제는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 근본적으로 궁극적 기반(ultimate foundation)을 찾는 종교적 존재(homo-religious)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문제를 접하는 데 있어서, 그는 W. C. Smith의 인격주의적 종교 연구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종교현상에는 신자의 입장을 떠나서 생각할 수 있는 고정된 객관적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교현상의 의미를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 이 종교현상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결코 외부인이 신자를 능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사에 있어서 유일한 옳은 지식은 '당사자의 의식 속에 참여하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주객 대립의 인식이론은 지양되어야 하며 오히려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대화하는 길만이 상대방을 옳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합리적 인격주의라고 한다. 합리적 인격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공동체적인 비판적 자기의식을 의미한다."
일반적 진리관은 비인격적 객관성을 의미하지만, 스미스의 종교관은 인격적 진리관이다. 즉 종교에 있어 진리는 특정한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격주의적 종교연구는 다양한 종교를 접하는 대화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방법론은 오늘날과 같은 종교다원적 시대에 종교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서 매우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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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크리스마스

일상 속에서 / illbegoodtree 2009.12.25 22:13

우울했던 작년 크리스마스. 변변찮은 수입이 없던 당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가족과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았었다. 작년 여름 큰 희망으로 첫 발을 내디딘 독일 박사과정 유학이었지만, 시작부터 우리에겐 가시밭길이었다. 인터뷰까지 통과되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독일정부 장학금을 마지막 심사에서 탈락하여 끝내 받지 못하게 되었고, 당장 먹고 살 미래를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렸던 까닭이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보냈던 시간들, 답답하기만 한 처지, 가족과의 불화 등 모든 것을 잊고 싶어 한동안 공부와 연구에서 손을 놓기도 했다. 매섭도록 추웠던 작년 겨울은 내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가족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주님까지 원망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거의 등을 돌리다시피 했다.
"하나님! 실컷 기도해 보았자 제 소원은 들어주시지 않는군요. 오히려 너무나 뼈아프고 괴로운 시간들만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이젠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단 그냥 닥치는대로 살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했는데도,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던 내게 다가온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따스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몇몇 교우들이 종종 찾아와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특히, 아욱스부르그 한인교회 목사님께서 베풀어 주신 따스한 조언과 사랑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내는 "우리의 꿈과 소망을 하나님께서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거예요. 할 수 있는데까지 새로운 자리를 잡아봐요"라고 말하며 나를 강하게 독려해 주었다. 유럽에서 자리를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내의 신념에 찬 격려에 내 마음 속에서도 "그래, 이제 밑져야 본전이다. 한번 해보자"라는 도전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몇달동안 이를 악물고 닥치는대로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구직을 알아보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는 연구소 및 대학원으로부터 제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7월말까지도 최종적인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더 좋은 연구소의 고용 제의를 기다리기 위해 다른 곳의 제의를 거절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연구소에는 결국 합격하지 못하여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받았던 모든 소중한 기회를 아쉽게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역전이 일어났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기회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할렐루야! 밑져야 본전이니 처음 제의를 받았던 연구소에 다시 한번 연락해 보자는 아내의 제안이 성큼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연락해 보았다. 놀랍게도 연구소 측에서는 언제든지 나를 대환영한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나는 이제 독일에서 정식 연구원으로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연구주제조차 생소하여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의 연구과제가 향후 미래 과학을 이끌어 갈 전망있는 분야라는 확신이 들고 있다. 또한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하지 않게끔 우리를 채워주시고 우리 가족을 더욱 더 넘치는 사랑과 화목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야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나의 부족함을 고치고 나의 달란트에 적합한 더 나은 내일을 선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랍고 빈틈없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련과 역경을 딛고 받은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하다. 지금 나는 연구원으로서 사랑스러운 가족과 평안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지난 역경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아직 내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과 영성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7:33)
지난 8월 막데부르그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내 마음에 일어난 큰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세례를 받은지는 3년 정도 되었지만 아직 예수님의 말씀과 진리가 내 삶의 중심에 자리잡지는 못하였었다. 그런데 이러한 느슨한 신앙의 문제점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신 분은 할레 한인교회의 목사님이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6-7,12-13)
하나님의 종이 되라! 그렇다. 어디서 어떠한 형태로 무엇을 하든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죽어가고 썩어가는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니었던가!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던 나를 이렇게 살려주시고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주신 분, 어찌 그 분의 종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곧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새해 2010년에는 주님이 내 영혼의 중심에 계시는 "성령 충만의 해"가 되도록 하고 싶다. 성령이 내 마음에 충만하고 내 삶을 지배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드리며 이웃들과 진정한 사랑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싶다. 나의 직업과 다른 일들은 그 다음 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연구도, 가정에서의 일도, 다른 봉사도 모두 하나님과 주님께 드리는 성스럽고 거룩한 것이 되도록 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 삶을 통하여 이웃과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그러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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