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1.11.27 무엇이 중요한가 by illbegoodtree
  2. 2011.09.21 사랑은 인생의 참된 즐거움 by illbegoodtree
  3. 2011.09.20 그리스도인의 혀 by illbegoodtree
  4. 2011.09.19 예수님의 하루 by illbegoodtree
  5. 2011.09.17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by illbegoodtree

무엇이 중요한가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11.27 22:46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인생에서 형통하게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실 이 믿음을 계속 지키는 신앙인을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믿음을 계속 지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그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 매우 무서운 파멸을 초래하는 죄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다름아닌 하나님의 은혜을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일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인생에 어떠한 파멸이 닥쳐오는지 묵상해 봅시다.
 
르호보암이 솔로몬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무거운 노역과 세금을 견디다 못해, 이스라엘은 두 나라- 즉,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이스라엘과 르호보암이 통치하는 남유다로 갈라지게 됩니다. 비록 르호보암의 잘못된 통치로 인하여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지만, 우상을 섬겼던 북이스라엘과 달리 남유다에는 여전히 성경이 있어서 하나님의 법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자 하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로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남유다의 국력은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역대하 11:17). 그러나, 이와 같이 세력이 강해지자 르호보암은 도리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법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12:1). 그 결과 이집트로부터 침략을 받아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4:25~26). 
 
이처럼 인생의 형통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데서 옵니다. 직장에서의 성공, 좋은 집에서 사는 것, 심지어 숨쉬고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성공하고 부하게 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저버릴 때 반드시 그에게 큰 고난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잊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불평 불만만 가득할 때 그의 삶에는 끝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판단을 해야할 때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생각하십시오. 가령,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외모나 성격 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먼저 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육적인 편안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적인 평안을 사모하십시오. 이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형통케 할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고난 중에 있더라도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그 믿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영적인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 속에서, 매사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지금 어떠한 시련과 절망스러운 상황에 있더라도, 혹은 나의 과거가 우상을 섬기고 죄악에 가득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또한 그러한 나의 과거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인생은 절망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축복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10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말씀의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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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생의 참된 즐거움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21 07:48

사랑의 손 (출처: 대구동신교회)


□ 오늘의 말씀은 전도서 11:1~12:1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말년에 죽음을 앞두고 삶을 뒤돌아보는 자서전적인 고백록으로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좋은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생의 참된 즐거움이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땅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투자하는데 익숙합니다.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런저런 보양식을 먹는 반면, 이웃에게 투자하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이 땅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그러한 투자가 결국 헛되다는 것입니다. 보험과 건강도 예기치 않은 엄청난 재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누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습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수영을 하다가 다리가 마비되어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어느 청년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처칠의 부모는 답례로 그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었고, 그는 훗날 훌륭한 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영국의 수상이 된 처칠은 열병으로 또 다시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어느 생물학자가 자신이 발명한 페니실린 주사로 처칠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 이 생물학자가 바로 어릴 적 처칠을 구해준 청년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이웃을 구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이 온전히 우리 안에 드러나길 원하십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어라.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주어라.
누가 네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어라.
네게 요구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무원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예수님은 누가 우리에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까지 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 리를 가자고 할 때, 첫째는 오 리도 못 가는 사람, 둘째는 정확히 오 리만 가는 사람, 셋째는 십 리를 가는 가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십 리는 가는 사람처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이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다시 전도서로 돌아가 봅시다. 솔로몬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흔하고 흔한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는 등 이런저런 구실을 대면서 지금 이 순간에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지요.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면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며 구름이 끼었다고 기다리면 추수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어떻게 불며 태아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일도 이해할 수가 없다.
너는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씨를 뿌려라. 이것이 잘 자랄지 저것이 잘 자랄지 아니면 둘 다 잘 자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초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우리가 환경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너는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씨를 뿌려라"는 말씀은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열매맺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영국의 사회비평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노력에 대한 가장 값진 보석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빛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상 인생을 즐겁게 살아라.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음의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라. 이 세상에는 기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청년이여, 젊음을 마음껏 즐겨라. 아직 젊었다는 것을 기뻐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근심과 고통을 제거하라. 젊음도 덧없이 지나가고 만다.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솔로몬은 항상 죽음의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며 오늘의 삶을 즐겁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쾌락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바라보는 것", 즉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근심과 고통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특효약입니다. 반면, 그저 방종하여 멋대로 살게 되면 훗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주님! 그저 해야 할 일만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여 열매맺는 삶,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21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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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혀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20 08:02

사랑의 손 (출처: kr.blog.yahoo.com/yooyookorea)


□ 오늘의 말씀은 에베소서 4:29입니다.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은 신앙의 참됨과 거짓됨을 결정짓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말'의 중요성에 대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만일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마음대로 부립니다.
배를 보십시오. 그렇게 큰 배가 강풍에 밀려 다녀도 항해사는 아주 작은 키 하나로 그 배를 마음대로 조종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혀도 몸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큰 손해를 가져옵니다. 작은 불씨가 큰 숲을 태우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혀는 불과 같고 악으로 가득 찬 세계와 같습니다. 혀는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생애를 불태우며 끝내는 혀 그 자체도 지옥 불에 타고 맙니다.
온갖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바다 생물은 사람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있고 또 길들여졌습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이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하나님을 찬송도 하고 그분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도 합니다.
한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함께 나올 수 있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거나 포도덩굴이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짠샘이 단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혀는 몸의 작은 부분이지만, 그 작은 부분이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을 망가지게 하며 지옥 불에 불타게 한다는 것입니다. 혀는 실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작가인 이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우화 작가인 이솝은 기원전 6세기 경 사모스에서 철학자 쿠잔토스의 노예였다. 
그는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던 중, 어느 날 이솝의 슬기로움을 시험하기 위해 주인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무엇이냐?”
이솝이 대답하기를 “사람의 혀”라고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혀는 진리와 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은 무엇이냐?” 
이솝이 대답하기를 “혀”라고 역시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혀는 남을 중상하고 모략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이 되기 때문이다. 

이솝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혀는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고 나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반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더 굵은 줄을 몰랐소?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짐을 더 무겁게 할 것이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당신들을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로 당신들을 다스리겠소.

르호보암의 악한 말로 인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분열되고 맙니다. 비단 르호보암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사실 인간은 온갖 짐승과 생물을 길들이지만, 정작 자신의 혀는 길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을 하십시오.

험담, 중상모략, 이간질, 불평, 원망 같은 더러운 말은 사람을 썩게 합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습관이라기 보다는 병에 가깝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말들이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사도 바울은 더러운 말을 하지 않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을 하기를 권면합니다. 선한 말이란 어떤 것일까요?

칭찬은 상대방을 세우는 좋은 말입니다. 성경에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잠언 27:21)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항상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시면서, 특히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서 덧붙여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출처: Wikipedia)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가 창조한 완벽한 조각상인 갈라테이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여성을 혐오하던 피그말리온은 어느 날 상아로 여인의 조각상을 을 만들었는데, 자신의 작품에 감탄하여 이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요. 그는 아프로디테의 제단 앞에서 "신들이여, 원컨대 나에게 나의 조각품인 상아 처녀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아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조각상은 실제 처녀가 되었습니다. 신화일 뿐이지만 이 이야기는 사람에게 기대하게 되면 실제로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는 교육학적 이론에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칭찬하고 축복하게 되면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변합니다. 

또한, 감사의 말은 사람을 아름답게 변화시킵니다. 감사의 말을 하는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 다른 감사할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서 "하나님, 내가 강도가 아닌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길을 얻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의 말과 더불어, 축복의 말도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고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기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너에게 자비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인자하게 너를 바라보시며 너에게 평안을 주시기 원하노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겠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못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길 원하셨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악하게 사는 사람도 축복할 때, 하나님은 진정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고 참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2:14)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은 어릴 때는 말썽 피우는 개구장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염려하였지만, 그의 할머니만은 “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 났어. 군인으로서 크게 성공할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맥아더는 훗날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눈이 확 뜨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칭찬이 그를 훌륭한 장군으로 이끄는 큰 힘이 된 것입니다. 

주님! 악하고 더러운 저주의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게 하소서. 대신 선한 말,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축복의 말로 저의 입을 충만케 하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20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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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하루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19 07:34



병자를 고치시는 주님 (출처: august8027.blog.me)


□ 오늘의 말씀은 마가복음 1:21~39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떠한 끝을 맺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과정이 참되지 않고서, 끝이 참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신 하루의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묵상해 봅니다.

아침: 예수님은 안식일 아침에 회당에 들어가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이셨음에도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들 일행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곧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
그의 가르침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가복음 1:21~22)

점심: 예수님은 오후가 되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안식일에 쉼의 시간을 얻기를 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안식일에조차 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을 떠나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예수님께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가셔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그러자 즉시 열병이 떠나고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마가복음 1:29~31)

저녁: 예수님에게 치유받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그들을 조금도 거부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날이 저물었을 때 사람들이 병들고 귀신 들린 사람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도 문 앞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갖가지 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이 자기를 잘 알기 때문에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가복음 1:32~34)

새벽: 이렇게 바쁘게 일하셔서 피곤하실 수도 있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조용한 곳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곳까지 제자들이 따라와 "사람들이 (새벽부터)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예수님은 "전도하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육체를 구제하는 것보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른 새벽 예수님은 일어나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고 계셨다.
예수님을 찾아다니던 시몬과 그 일행은
예수님을 만나자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까운 이웃 마을에도 가서 전도하자.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왔다” 하시고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전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마가복음 1:35~39)

이러한 예수님의 하루를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쁘게 하루를 보내셨으며, 그러한 바쁜 생활 속에서도 사명과 중심을 잃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하루는 바쁜 듯 하면서도 질서가 있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듯, 그 궤도를 이탈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제시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의 하나는 '급한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급한 일을 먼저 하게 되면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반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더욱 강건한 하루를 살게 됩니다. 두 나뭇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나무꾼이 숲 속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는데, 한 나무꾼은 쉬지 않고 계속 장작만 열심히 팼습니다. 반면 다른 나무꾼은 쉬엄쉬엄 장작을 팼습니다. 누가 장작을 더 많이 팼을까요? 놀랍게도 쉬엄쉬엄 일했던 나무꾼이 더 많은 장작을 팼습니다. 이는 나무꾼이 쉬는 동안 도끼의 날을 갈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을 하기 전에 도끼의 날을 갈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 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간도 구원시켜서 주님께 순종시켜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는 바쁘기 때문에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많이 묵상하고 기도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로부터 시작된 새벽기도는 한국교회를 부흥으로 이끌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듯이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쁘게 사셨듯이, 저희도 일터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저희의 행실로써 주님의 은총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19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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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아침을 여는 큐티 / illbegoodtree 2011.09.17 07:29



가나의 결혼잔치 (출처: 안동교회)


□ 오늘의 말씀은 요한복음 2:1~11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큰 이적을 보이시곤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적이 아무런 준비없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이적을 보이신 곳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였습니다. 그 곳에서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틀 후에 갈릴리 가나에 결혼식이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대를 받아 갔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자
예수님은 “어머니,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셨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바닥이 나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곳에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곳에 계십니다. 식량이 없는 곳, 사랑이 없는 곳, 평화가 없는 곳, 행복이 없는 비참한 그 곳에 주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지 못해 낙심해 있을 때도 주님이 계시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여 주셨습니다. 낙심해 있을 때, 힘들고 어려울 때, 슬퍼할 때, 그 때가 바로 주님의 이적이 일어날 때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참고 그것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거절의 의미가 아니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종종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기도 합니다.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에게 번제를 요청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몇일을 기다리라고 하였지만, 사울은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를 행하고 맙니다. 사무엘이 와서 보고 사울왕에게 "당신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울은 크게 패배하고 맙니다 (사무엘상 13:8~15).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때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왜 저를 지금 당장 도와주시지 않나요?"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믿고 기다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각각 물 두세 3통 드는 크기였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워라” 하시자 그들은 아구까지 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이제 떠다가 잔치 책임자에게 갖다 주어라” 하시자 하인들은 그대로 하였다.
잔치 책임자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몰랐으나 그것을 떠 온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 잔치 책임자는 신랑을 불러
“흔히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군요” 하였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으로 이런 기적을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하인들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의심할 만도 했습니다.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일이 당시에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떠다가 잔치 책임자에게 갖다 주어라"라고 말할 때에도 어쩌면 그것이 그대로 물인 상태였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떻게 물을 손님에게 갖다 드리란 말인가? 주인만 욕되게 하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충분히 할 만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지시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자 드디어 이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노아도 산 위에서 배를 만들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대홍수로부터 구원되는 이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7장).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씀에도 의심없이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적이 일어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항상 계시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적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워주소서.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와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17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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