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침을 여는 큐티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는 백성들을 넓은 평지에 모아놓고 설교를 합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대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의 실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마자 하나님의 말씀을 잊습니다. 아마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40년 광야생활 동안 백성들이 불평하며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 했던 고통보다도 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모세에게는 감사할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한 모세의 설교는 일종의 경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설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비유합니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이슬처럼 맺히며 
연한 풀밭 위에 내리는 보슬비요 채소에 내리는 단비라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내리는 보슬비요 단비이며 맻히는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메말라가는 우리의 심령에 내려오는 생명의 양식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고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 속에 담긴 의미는 참으로 깊습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육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아들을 보더니 "이 아들은 커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지요.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아들을 길거리에 버립니다. 버려진 아들은 섬에 팔려가는 등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겨우 탈출하였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온통 분노로 가득하였지요. 그런데,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었던 예수님이 생각이 나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고, 그 후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를 모두 용서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막 같은 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광야에서, 
그들을 자기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지켜 주셨으니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흔들어 새끼가 떨어지면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올리듯 하셨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눈동자 같이, 또한 독수리 같이 지키시는 분입니다. 눈동자처럼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어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부짓는 우리의 고통도 들어주시는 주님!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 분은 "눈동자 같이" 우리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양육하는 방식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새끼를 절벽 위에 높은 둥지에서 떨어뜨립니다. 새끼가 날개를 파닥이며 솟구쳐 오르며 애쓰다가 힘에 부쳐 떨어지려 하면, 어미 독수리가 손살같이 잽싸게 내려가 날개로 새끼를 받아 올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그러합니다. 우리를 연단시키고 하나님 아버지 품에서 더욱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고난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에 힘겨워 하여 지치고 쓰러질 때,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세워주시고 지켜주시며 솟아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임을.
 
이스라엘이 살찌고 비대하며 윤택해지자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반석 되신 구원자를 멸시하였다.
그들이 이방 신을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질투하시고, 
그들이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분노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게 제사하였으니 
그들이 알지 못한 신, 최근에 나타난 신, 
그들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않은 신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낳은 반석 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그들을 미워하셨으니 
그의 자녀들이 그를 노하게 하셨음이라.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얼마나 가증한 존재입니까? 살찌고 윤택해지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심지어 멸시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정작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을 잊고 그 분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게 제사하고, 욕망 안에 취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도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러한 우리들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분노의 징계이면서도 사랑의 징계입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부패하여 
그 행위가 쓰고 독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 같으며,
독사의 독으로 만든 독주와 같다.
이것이 내 창고에 쌓여 밀봉되어 있지 않은가?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다. 내가 갚아 주겠다. 
환난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속히 오리라.
 
주님, 배부르고 윤택할 때 하나님을 잊고 방종하였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고난의 때에나 형통할 때에나 변함없이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드리도록 이끄소서. 저희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겠사오니, 저희가 오직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 안에서 평강할 수 있도록 이끄소서. 아멘.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11월 18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의 요약입니다. 이 글은 실제 설교말씀의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침을 여는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의 자리  (0) 2011.11.28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십시오  (0) 2011.11.28
영원한 것만을 사모하십시오  (0) 2011.11.28
끊임없이 감사하십시오  (0) 2011.11.28
순종하는 삶의 축복  (0) 201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