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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영원한 것만을 사모하십시오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동양 사람들과 달리 서양사람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삶도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정작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생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인생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를 잊습니다. 다윗도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화려했던 시간들, 20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던 수치스러운 시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깊은 아픔과 괴로움에 빠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 속 깊은 데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더욱 커져서 주님께 아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가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내가 언제 죽습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살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으니, (셀라) 
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이니,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윗은 인생은 한 뼘 길이와 같고 한낱 입김과 한오라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아니, 나의 일생은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이와 같이 고백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에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일들이 당장 행복감을 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임종을 앞두고 우리는 다윗처럼 그 일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쓸데없는 일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가여운 인생입니까?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대다가 젊은 나날은 금새 지나가 버리고 연기처럼 날라가 버린 인생을 돌아보며 허망함에 빠져 탄식과 깊은 괴로움 속에 맞이할 죽음의 순간. 다윗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을 보시고, 잠잠히 계시지 말아 주십시오. 
나 또한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숨 한 번 돌릴 수 있도록,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내게서 눈길 한 번만 돌려주십시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노릇 하였던 우리 옛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나 영원한 것만을 사모하는 우리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얼마나 더 큰 축복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나라만을 소망하고, 오직 주님에게만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부귀의 유혹들로 인하여 우리가 실족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영원한 것만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임종의 순간에 하나님의 평안 안에 거하게 하소서. 아멘.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11월 17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의 요약입니다. 이 글은 실제 설교말씀의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