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침을 여는 큐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결국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도 불평과 불만에 가득하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광야를 정처없이 유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시련과 어려움에 불평, 불만하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한 백성이 언제까지 나에게 불평할 것인가?
나는 이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너희는 그들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 말대로 해 주겠다.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민수기 14:27~29)
그러므로 혼자 있을 때에도 말을 조심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의 하나님께서 아무리 작은 당신의 속삭이는 말일지라도 들으실 것입니다. 말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도 힘들고 어려울 때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시련 속에서도 피어난 꽃같이 더욱 큰 기쁨과 감사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온전한' 순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반'의 순종, '형식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물이 부족한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를 향해 물을 내라고 말하라고 명하셨지만, 모세는 감정이 격해져서 "이 반역자들이여,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이 바위에서 물을 내야 하겠소?"라고 말하며 지팡이로 바위를 치는 실수를 범합니다 (민수기 20:7~12).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기는 하였지만, 온전한 순종이 아니었고 분노에 가득한 형식적인 순종일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와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온전히 순종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36,38).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 자체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내게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모든 것을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8:3~5)
또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어린아이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13~15). 말씀을 믿지 못하는 까닭은 살아오면서 형성된 상처와 아픔들의 기억들과 고정관념이 마음 속에 남아 하나님의 말씀을 비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들고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과 모든 거짓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바로 잡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나 묵상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길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직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 한 가운데 계시어 주시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11월 12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