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 에세이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우리는 종종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나 편견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한 습관이나 편견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얼마 전 주일예배를 마치고 목사님 댁에 하룻밤을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꿈을 꾸었는데, 그 중의 한 가지는 누군가가 어떤 더러운 것을 내게 주었는데 그 더러운 것을 먹으면서 웃는 장면이었습니다. 또 다른 꿈은 내가 어떤 책을 갖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가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꿈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더러운 것을 먹으면서 웃었다는 꿈은 부정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아직 좋아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어떤 것을 가져가서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꿈은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는 집착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말씀을 듣고 '나의 꿈이 개꿈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그릇된 습관과 편견들을 단호히 버려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상당한 개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이전의 습관과 편견들이 다시 나를 사로잡곤 했던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한 두번이지, 계속 반복되면 죄에 대해 둔감해지고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나는 죄에 둔감해지고 스스로 합리화하게 되는 것이 매우 두려웠습니다.

고넬료 가정을 축복하는 베드로 (출처: jbjoon63.blog.me)

 
사도행전 10장에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인은 이방인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을 만나는 것은 사회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러한 관습을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튿날 낮 12시쯤 되어 그들이 욥바 가까이 갔을 때 베드로는 기도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가 매여져 땅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는 두 번째 음성이 들려왔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보자기 같은 그 물건은 곧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여기서 베드로의 대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을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베드로가 이렇게 쉽게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도대체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이 무엇이길래 주님의 말씀을 거부할 정도였을까요? 

사실 그는 겉으로는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을 먹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속되고 깨끗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관습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왕따'를 당할 것이 두려워 이방인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환상 속에서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을 때, 내면에 있던 두려움이 베드로로 하여금 그러한 대답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깨끗한 것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의 말씀까지 거부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사실은 '왕따'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이방인을 만나지 못한 것임에도 그는 부정한 것을 멀리한다는 명분으로,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였습니다.

나의 삶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 모릅니다. 가령, 뽀르노를 봐서는 안되는 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부끄럽게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뽀르노를 종종 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그것이 반복되면, "원래 사람은 금방 고쳐지지 않아. 다시 마음 돌리고 일어서면 되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위를 교묘하게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질 때, 어떻게든 그 서운한 마음을 합리하화기 시작하지요. '그가 나를 서운하게 할만한 행동을 충분히 했어. 내가 그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해'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사도행전 10:15) 라고 하신 말씀에는 이방인을 속되다고 여기는 편견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적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존재입니다. 옛 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부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종 자신이 죄를 지을 때마다 "나는 죄인이야. 속된 존재야"라고 자책하곤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해 주신 존재인데,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래 묵은 과거의 습관과 편견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오래 묵은 습관과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습관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믿음과 순종으로 과거의 습관과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경험하고 나서 처음에는 그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방인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이 무슨 뜻일까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소리쳐 부르며 베드로라는 시몬이 있느냐고 물었다.
베드로가 아직 그 환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그래서 베드로는 내려가 그 사람들에게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로마 군대의 장교 고넬료가 보내서 왔습니다. 그는 의롭고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모든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가 선생님을 집에 모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고 우리를 보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비로소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예외없이 전해져야 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방인을 만나는 것을 주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이야기하면서 안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유대인이 이방인과 사귀거나 찾아가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속되거나 깨끗지 않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을 때 내가 사양하지 않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불렀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반드시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도 유대인 사회로부터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고넬료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는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사도행전 10:20)는 성령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과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열려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게 되었고, 훗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를 이기는 작은 순종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나 자신에게도 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과 순종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이 너를 찾고 있다.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나의 그릇된 습관과 두려움과 편견을 버리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갈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발목잡는 습관들을 믿음과 순종으로 극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소유  (1) 2011.10.10
복음을 전하는 파수꾼  (0) 2011.10.02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  (0) 2011.09.22
네 죄는 용서받았다, 일어나서 걸어라  (0) 2011.09.19
예수님의 제자 오디션  (0) 2011.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