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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무소유

법정스님 (출처: aruken-story.tistory.com)


법정스님은 "무소유(無所有)" 정신을 철저히 지키면서 살았던 스님으로 유명하다. 소유가 집착을 낳고, 집착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불교적 가르침은 일리가 있다. 무엇을 소유할 때, 인간은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고, 집착과 번뇌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법정스님은 죽을 때까지 무소유의 고행에 정진하여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사실 그 분도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는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소유물은 극히 적었지만, 텃밭, 옷, 안경, 라디오, 책 등을 소유해야만 했다. 그것을 소유라 인정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완벽한 무소유는 죽음일 것이다. 법정스님도 죽고 나서야 비로소 소유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무소유'란 살아있는 자에겐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착과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죽는다고 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영적 상태는 다음 생으로 넘어가게 된다. 셀 수 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통해 영적 진화를 해야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고도 완전히 죽는 길을 알려 주셨다. 불교신자에게는 수천만번의 윤회를 거쳐야 갈 수 있는 길을 단 한번에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죄의 종이었던 내 영혼이 십자가에 못 박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완전히 새롭게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완벽한 '무소유'의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 무소유는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0~14) 

어떻게 죄의 종이었던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단 한번에 완벽한 '무소유'를 실현하고 거룩한 영혼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임을 안다. 그렇다. 나는 이제 내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믿는다. 이제 나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산다는 사실을 믿는다.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까닭에 이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십자가 (출처: cafe.naver.com/hanna4540)

 
그런데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여전히 죄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음란한 생각들, 교만함, 위선적인 태도, 이기심 등에 수도 없이 시달린다. 특히, 정욕은 나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이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앙적이고 착한 모습을 보이는가에 더 초점을 두려는 나의 위선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산다면, 마음이 티없이 맑고 깨끗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더러우면서도 깨끗한 척 하려고 하였으며, 교만하면서도 겸손한 척 하려고 하였으며,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버리지 못한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들을 모두 기술하자면 수백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정도이다. 나 같은 죄인 중의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산다고 고백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욕망들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과연 나의 고백은 거짓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 영혼은 이제 본질적으로 이전과 같지 않음을 믿는다. 내 영혼의 본질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리하고 있으며 영원한 천국에 거하고 있다. 그러나, 내 영혼의 껍데기는 여전히 죄에 더럽혀져 있다. 이제 나에게는 성령님의 힘으로 그 껍데기를 청소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정욕, 교만, 위선, 이기심은 모두 나의 본질이 아니며 껍데기에 묻는 먼지일 뿐이다. 매일 책상 위에 먼지가 쌓이듯, 그것들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나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나를 더럽게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나의 본질, 즉 완벽한 '무소유'의 상태에 있는 나의 본질을 결코 바꾸지 못할 것임을 믿는다. 다만, 청소를 오랫동안 게을리하면 그 본질은 먼지에 묻혀 사라진 것과 다름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다름아닌 부단한 마음의 청소를 통해서 내 마음 한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마음을 청소하는 방법은 법정스님이 했던 그 무소유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배우고 싶다. 법정스님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말씀을 사모하고 끊임없이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시는 교우들을 보면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가슴 깊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음의 청소를 게을리하고 도리어 내 마음에 달라붙은 먼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다. 참으로 갈 길이 멀지만, 신앙의 선배들처럼 믿음으로 매 순간 마음의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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