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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네 죄는 용서받았다, 일어나서 걸어라

후쿠시게 다카시 (출처: 국민일보)


세계 최초로 초박형 LCD을 개발한 일본 기술자인 후쿠시게 다카시씨는 죽음의 순간에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각주:1] 사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스키장 정상에서 갑자기 뇌경생으로 쓰러졌습니다. 병원 검진 결과 그의 뇌는 이미 50%가 기능을 상실해 죽음 직전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는데도,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 때,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의사가 아내에게 죽음이 임박했으니 가족에게 연락하라는 말이 들렸어요. 
무엇보다 5세 된 딸과 작별인사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순간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면…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제가 사막위에 쓰러져 있어요. 
그곳에서 나를 향해 걸어온 분이 자신이 예수라고 하는데 친구 같은 포근한 기분이 들었지요. 
물 좀 달라고 했더니 아름다운 빛깔의 물을 주더군요. 
그것을 마시는 순간 온몸에 생기가 돌면서 일어났어요.

그 후 놀랍게도 3주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 점점 건강도 회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년 전에 있었던 마가복음 2장의 장면으로 날아가 봅시다.

며칠 후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예수님이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 앞까지 꽉 차서 발 들여놓을 틈도 없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이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를 예수님께 데려갈 수가 없어서 그분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렸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얘야,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2:1~5)

예수님이 한센병자를 고쳐주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곁에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예수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치유할 병자들이 저렇게 많은데, 언제 내 차례가 돌아온단 말인가. 내가 저들을 밀치고 들어가게 되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거야'라고 생각하며 풀죽은 듯이 그 자리를 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간절히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병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통째로 달아내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집도 아닌 남의 집의 지붕을 뜯고 들어간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출처: hunjungart)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왜 남의 지붕까지 뜯고서 반칙을 저지릅니까?"라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고자 하는 간절함, 예수님이 반드시 나를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 장면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그저 그런 적당한 바램 혹은 기대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반드시 나의 소망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굳은 믿음과 간절함이 있다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뜯고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처럼, 나의 행동과 삶이 실제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의 병을 치유해 주실거야" 또는 "하나님께서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해 주실거야"라고 굳게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가장 아끼던 것을 포기하고 버리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내 안에 거짓된 것을 버릴만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왜 천국에 가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았는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나는 예수님 곁에 모여있는 군중들과 같았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만 했지, 천국에 가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데는 굼뎅이처럼 게을렀습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도 실제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것만 하려고 했지, 정말로 포기해야 할 것들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겁쟁이였습니다. 나는 부끄럽고 부끄러운,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다시 예수님과 중풍병자의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네 병은 고쳐졌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죄는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모든 병은 인간의 '죄'에서 비롯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 '죄'란 눈에 보이는 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저지르는 모든 죄를 말합니다. 겉으로는 착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악한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까? 불륜, 음란, 사기, 도적질, 미움,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우리의 머리 속을 오갑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병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겉으로 볼 때 중풍병자의 병을 고친 것이지만, 사실은 그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은 곧 우리의 병을 치유하여 주심이요,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는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사실 나는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 그 의미가 마음 속 깊이 와 닿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2장의 말씀은 내 죄의 용서가 그 이상의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그저 과거의 청산이 아닙니다.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심은 곧 나의 몸과 마음을, 내 존재의 본질을 뼛속부터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네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서 걸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그 중풍병자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는 용서를 받음으로써 몸과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변하였으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침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곧 일어나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침구를 걷어 가지고 걸어나갔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놀라 “이런 일은 처음 보았다!”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마가복음 2:11~12)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나의 지난 삶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네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죄를 용서받았음을 너무나도 쉽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께서 "일어나서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리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조금의 변함도 없이 이전의 죄의 습성대로 계속 살아갔던 것입니다. 마치 자판기처럼 죄 용서 티켓을 쉽게 얻으려 하면서, 막상 주님께서 "일어나 걸어라"고 할 때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지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저는 "일어나 걸어라"고 말씀하실 때 이제 더 이상 게으르게 앉아서 한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죄는 쉽게 용서받으면서도 죄는 끊임없이 계속 저질렀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씀하실 때 굳게 믿고 당장 일어나 걸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간절한 소망과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1. 국민일보 기사보기: http://spmhouse.aramblog.com/?document_srl=139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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