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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복음을 전하는 파수꾼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과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거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웠다’고 전하여라.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갖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인가?"라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그저 선택사항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목회자나 선교사가 특별히 담당할 일이며, 평신도가 의무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착실하게 살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아마도, 많은 평신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네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라.
‘내가 어떤 나라에 군대를 보내고 그 땅 백성들이 자기들 중 한 사람을 택하여 파수꾼을 세웠다고 하자.
그가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그 백성에게 경고하였으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그 경고를 무시하고 방심하다가 적군의 칼날에 죽으면
그 책임은 죽은 사람 자신에게 있다.
그가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무시하였으므로 그가 죽은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만일 그가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자기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파수꾼이 적군이 오는 것을 보고도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아 사람들이 적의 칼날에 죽으면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 죽겠지만 나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 파수꾼에게 물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아, 이와 같이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너는 내 말을 듣고 내 대신 그들에게 경고하라.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고 말할 때
네가 그 악인에게 경고하여 그를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로 죽겠지만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그 악인에게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여도 그가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을 것이며 너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명한 세상의 파수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삼았다" (에스겔 33:7)라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의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으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파수꾼'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알고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마을을 떠날 때 신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려라" (마태복음 10: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저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무'라는 것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지요.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 20대 청년시절 어느 민족종교에서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 종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거리를 누비며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했는데,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어린 나에게 그런 전도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사이비 종교지만 어떤 좋은 것을 남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저를 그렇게 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 혼자만 알려고 하는 것은 결코 참다운 믿음의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를 돌아보면 좋은 것을 남에게 전하여 함께 복을 누리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 매우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은 있긴 한데,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막상 말문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가 나를 경계하고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종교 문제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를 발목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로 인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죽기까지 우리에게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값 없이 은혜를 받았는데 (로마서 3:24), 우리 역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바쳐서 값 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 것도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들의 목숨을 건 열정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하용조 목사님의 외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선교에 목숨 걸었다!" 그렇습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용조 목사님처럼 선교에 목숨을 걸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목회자나 선교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 그것도 '내 목숨을 걸어서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할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이 항상 제 머리 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항상 반성하고 개선하여야 하겠지만, 이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사탄의 계략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나의 능력과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이제 제 마음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불길이 솟구쳐 오르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쓰임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을 비우고 그 자리에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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