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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그리스도인의 향기

꽃 (출처: marcspon & books)


꽃에 향기가 있고 꽃마다 제각기 다른 향기를 뿜어 내듯이, 사람에게도 각자 풍기는 고유의 향기가 있다. 싱그러운 향기를 지닌 사람, 매력적인 향기를 지닌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랑스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겨운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향기는 사람을 밀고 당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란 무엇일까?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나 이태석 신부와 같은 향기, 주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니고 복음을 전하였던 바울과 같은 향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믿음과 사랑은 역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 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믿음과 사랑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그리스도인의 향기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겸손’의 향기다.

나를 대외적으로 높이지 않고, (스스로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나를 낮추는 것, 아무리 배운 지식이 많더라도 끊임없이 남에게서 배우고 익히려는 자세 등등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겸손의 모습들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겸손의 의미와 겸손한 삶의 모습은 그러한 상식적인 정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겸손이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실 때, 온갖 유혹을 받으셨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모두 물리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태복음 4:4,7,10)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기 전, 감람 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도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가기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던 주님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의 향기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얼마나 교만해 보였겠는가? 그러므로, 겸손은 하나님께 순종하되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거짓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라고 말씀하셨다. 종종, 나는 그다지 경건한 삶을 살지도 못하면서 신앙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교만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달란트를 나를 높이는 일이 아닌 주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떡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라면 계속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회개와 용서 (출처: 천주교 안락성당)

겸손은 ‘회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중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장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적인 자만감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제 나는 구원을 받았으니 영적인 레벨이 다르다고 여기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회개하지 못한 존재들이고 훈계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구역질 나는 향기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사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간다고 믿지 않는다. 입술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께서 직접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나 자신의 회개만이 있을 뿐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1~5)

남의 허물을 보아도 오히려 스스로 더욱 깊이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야말로 마음 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향기가 아닐까 싶다. “너는 왜 예수를 믿지 않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런 식으로 방탕하게 사니까 맨날 그 모양이다”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 보다는, “제가 부족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더 많은 사랑과 축복을 함께 나누지 못한 저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이웃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겸손은 ‘하나님과 나,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겸손이 나를 낮추는 것이라고 해서, 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기가 하나도 잡히지 않아 낙심하고 있는 한 어부를 머리 속에 그려보자.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고기를 잡도록 해 주셨다. 그는 놀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우습게 보았던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보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그는 놀라고 만다. 훈계하실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나를 더 크게 높여 주시다니! 주님께서 잡아주신 수많은 고기보다 더 중요했던 한마디는 바로 시몬으로 하여금 참다운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었다. 그는 훗날 예수님의 사도인 베드로이다. 겸손이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랑과 가치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와 이웃를 지극히 사랑하시듯 나와 이웃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을 연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극한 겸손으로 우리 각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출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겸손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에 얼마나 많은 허영과 교만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게 된다. 남이 나를 칭찬하고 높여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교회에서는 착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나의 모습도 본다. 반면, 누군가가 나를 비판하고 우습게 보면,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어릴 시절 나를 무시하고 헐뜯는 친구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매우 컸던 모양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허욕에 흔들리기 쉬운 존재인가. 복음을 묵상하는 경건한 나의 모습 뒷면에는 욕망에 뒤덮인 매우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 또한 숨겨져 있음을 본다. 아마도 그 추악한 뒷면을 먼저 본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인지를 알고는 당장 침을 뱉고 돌을 던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던가!

그렇게 하나님을 속이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지만, 결국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 너무나 큰 죄인이면서도 복음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것,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숙명인가 보다.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회개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 속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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