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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알곡과 쭉정이

알곡 (출처: photo.naver.com/view/2011090512272532257)


백성들은 메시아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혹시 요한이 그가 아닌가 하고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이 곧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자기 타작 마당에서 모든 곡식을 키질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지옥 가는 성도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옥 가는 교인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즉, 교회 안에서도 알곡과 쭉정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우선, 알곡과 쭉정이는 겉은 비슷하지만 속은 다르다. 알곡은 속이 꽉 차있는 반면, 쭉정이는 까보면 아무것도 없다. 겉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을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거짓된 그리스도인도 겉으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통 사악한 생각과 음란함, 증오, 탐욕으로 가득하다. 반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고 때로는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에게도 때때로 탐욕과 욕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곧바로 회개한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골방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기도한다. 그가 하는 일을 굳이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알곡과 쭉정이의 다른 특징은 바람이 불 때 쭉정이는 휘익 날라가는 반면 알곡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시련과 어려움이 닥쳐올 때,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탐욕의 불길로 도망간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 시련을 되도록 빨리 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반면, 참된 그리스도인은 시련과 어려움이 닥쳐올 때 하나님께 더욱 간구하고 기도하며, 더 나아가 그 시련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고통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이요 은혜가 된다. 시련 속에서 그의 영혼은 더욱 단련되고 성숙해진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치면 크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한, 쭉정이는 심으면 생명이 없으므로 아무런 결실이 없는 반면, 알곡은 심으면 씨가 되어 수십배 수천배의 결실을 얻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고 거짓 예언자들과 진짜 예언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보고 진짜 예언자인지 가짜 예언자인지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따거나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놀라운 말씀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이다. 좋은 열매는 사랑, 평화, 복음을 세상에 심는 것일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웃에게 사랑과 평화를 심고 복음을 전한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라고 하였다.

그러나 외적인 결실을 많이 얻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열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천국 문 앞에서 "주님, 저는 매일 새벽마다 남을 위해 기도하였고, 수천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천국에 가는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사악함, 위선, 거짓, 교만, 탐욕으로 가득해서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라면, 오히려 나는 굳게 닫힌 천국문 앞에서 통곡하게 될 것이다.

“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악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거라’ 하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과거의 결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결실을 자랑거리로 삼고 고개를 들고 다닌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내가 알곡처럼 살아왔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잊는다면 하나님은 떠나가고 내 마음은 순식간에 쭉정이로 바뀌어 버릴 수 있다. 과거의 결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반면, 아무리 작은 과거의 결실이라도 그것은 오직 주님의 것이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알곡인가 쭉정이인가?" 그러나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없다. 오직 이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외적으로 선한 모습, 신앙생활의 열심을 보이려고만 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살았음을 고백한다.  나는 사실 쭉정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 이제 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고 참된 회개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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