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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그리스도의 겸손과 십자가의 사랑

기도 (사진 출처: 하사랑으로의 초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그리스도인이 쉽게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교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와 그 믿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처 돌아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순간, 내 이웃과 사랑하는 이에게 그 복음을 전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교만과 독선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서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교만했는지 가슴 깊이 회개하고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일 것이다. 주님께서 가시나무 왕관을 쓴 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할 때 사람들의 조롱과 채찍을 받으셨음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각주:1]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을 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마냥 외칠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부터 가슴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성품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하겠다.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의 1월 23일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감동을 받은 것이 있다. 십자군 전쟁 당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력으로 이교도들을 무찔러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성 프란체스코는 오직 평화를 외치며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채로 수도사의 복장으로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가서 술탄 말렉크 알 카멜을 만나 복음을 전하려 했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찾아간 것도 놀랍지만, 술탄은 그의 인격에 감명받아 오히려 정중히 대접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저 성경책을 뿌리고 말로만 "주님을 믿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질 때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