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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겸손하라

제자의 발을 닦이시는 예수님 (출처: 페이스에듀)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1-8)

"내가 제일 잘났어"나 "내가 최고야"와 같은 나를 높여주는 생각이나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해서, 자신을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깔보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도 한다. "난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땄지. 넌 겨우 지방대? 훗~ 너와 난 레벨이 다르구나" 이렇게 조롱한 후 실컷 우쭐대고 거기에서 정신적인 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빌립보의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일상 속에서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를 누르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를 종종 겪곤 한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할 때도 점점 내가 대단히 선한 사람인 양 생각하며 허영에 빠지곤 한다. "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하고 있지. 하나님께선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욱 이뻐하실 거야." 

그러나,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나의 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도 돌아보아 사랑과 성령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가? 돈을 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명예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런 목표를 가져왔다면, 지금부터는 남을 더 높이고 사랑을 나누며,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겠다는 목표로 바꾸면 어떨까? 내 가치, 내 브랜드를 높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 보다는,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가치와 브랜드를 높여주는 그런 일,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있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야말로 참된 삶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 (출처: 페이스에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직 나의 명예와 삶만을 위해서 살아왔음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받는 이웃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오직 내 능력과 브랜드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흥미거리였다. 그래서, 속으로는 세계 일류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자신을 낮추시고 조롱과 핍박,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바울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싶다. 주님의 사랑의 빛이 내 마음 안에 충만하고 이웃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