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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인격주의적 종교이해


내가 처음 종교를 접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어머님을 따라 성당을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떠오르는 것은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보던 일, 성당 벽에 장식되어 있던 모자이크 그림들,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조각들, 성모 마리아 상...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때는 내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가곤 했던 것 뿐이었다.
 
그 후 이사를 하게 되면서, 성당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분명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주관하고 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곧잘 명상에 빠지곤 하였는데, 우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카톨릭이라는 범주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어떠한 종교적 신앙도 갖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에 대해서 명상하고 기도하곤 했다. 나의 하느님 신앙은 자연과학에 대한 순수한 감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동양사상, 불교 사상 등에도 관심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하느님 신앙은 이러한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관심을 포기하여야만 한다는 것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겐 이 모든 사상들이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신앙적 전통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종교전통을 부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의문을 가지곤 했다.
 
그러던 중, 대학에 진학하면서 당시 서강대학교에 개설되어 있던 종교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종교학과가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만 개설되어 있고, 다행히 나는 훌륭한 교수님의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학 수업을 처음 듣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자연과학의 이해범주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여 주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신학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면, 종교학은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역사적 관점 등의 인문학적 관점에서 종교현상의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서강대학교 길희성 교수(Harvard University, Ph.D.)의 말씀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학적 지성은 개방적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하며, 신학과 세속적 지성 사이에서 제 3의 길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상대의 입장에 서서 연구하는 것이며, 접근방식은 대화적 접근방식과 인간주의적 접근방식이어야 한다."
길희성 교수의 강의는 내게 종교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침을 제시하여 주었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은 문화의 기반이 종교적 지배로부터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자신의 독자적 기준에 따라 운동하게 되는 세속화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문제가 국제적인 분쟁이나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는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직도 여전히 종교적인 문제는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 근본적으로 궁극적 기반(ultimate foundation)을 찾는 종교적 존재(homo-religious)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문제를 접하는 데 있어서, 그는 W. C. Smith의 인격주의적 종교 연구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종교현상에는 신자의 입장을 떠나서 생각할 수 있는 고정된 객관적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교현상의 의미를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 이 종교현상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결코 외부인이 신자를 능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사에 있어서 유일한 옳은 지식은 '당사자의 의식 속에 참여하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주객 대립의 인식이론은 지양되어야 하며 오히려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대화하는 길만이 상대방을 옳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합리적 인격주의라고 한다. 합리적 인격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공동체적인 비판적 자기의식을 의미한다."
일반적 진리관은 비인격적 객관성을 의미하지만, 스미스의 종교관은 인격적 진리관이다. 즉 종교에 있어 진리는 특정한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격주의적 종교연구는 다양한 종교를 접하는 대화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방법론은 오늘날과 같은 종교다원적 시대에 종교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서 매우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