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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마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어




안녕하세요. <시가 있는 마을>의 유원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갖고 계신가요? 부모님의 지어준 이름, 친구가 지어준 별명, 아빠, 엄마, 동생 등등, 아마 다 세어보면 수십가지가 될거예요.
저도 어릴 적 호섭이, 퀘스쳔맨 같은 여러가지 별명이 있었죠. 퀘스쳔맨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는데, 그나마 맘에 드는 별명이었죠.

오늘은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를 읽고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세상에서 저를 처음 만난 부모님입니다.
앙앙 울면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부모님은 제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유원상.
원상태로 돌아가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구요. ㅋㅋ 
굳이 해석을 하자면 서로 으뜸이 되자, 아니면 서로 높여주자 이런 의미로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때 저는 하나의 의미가 된 거죠.
요즘 신문에 보면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변기 안으로 넣어 죽이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축복과 함께 부여받은 첫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네요.

다음으로 떠오르는 분은 중학교 3학년 때 김복자 담임선생님입니다.
사실 중학교 졸업 후 그 선생님과 연락을 해 본 적은 없는데요. 
제가 그 선생님을 기억하는 건, 선생님께서 저의 생각과 가능성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죠.
저는 당시 다른 학생과는 달리 공상 속에 살았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공상의 세계를 다 들어주시고 그런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죠.
솔직히 그 선생님을 조금 사모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그 선생님이 제게 어떤 별명을 지어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선생님은 제게 잊혀지지 않을 의미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지금 저의 아내와 딸입니다.
수많은 남자와 여자 속에서 단 둘이 만나 결혼해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비죠.
아내와 지내면서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쓸쓸히 홀로 지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봐주며 관심을 쏟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내와 저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만난 순간. 그 아름다운 생명에게 이름을 부여했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분은 최근 트위터에서 만난 박성미 선생님입니다.
놀랍게도 생각하는 방식들이 저와 비슷한 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 뇌과학 연구합니다"라고 말하면, "당신 뇌나 한번 연구해 보소"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박 선생님은 제가 하는 생각들을 잘 이해해 주셨고 어떤 것들에는 감동을 받으실 정도였습니다.
저에게 "화이부동"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남의 의견과 잘 조화하되 맹목적으로 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평생 이 이름대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이렇게 소중한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은 제게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분 한분 떠올려보니,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운다는 것은 곧 사랑받는다는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트위터를 하는 이유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로부터 의미가 되기 위한 몸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의미가 되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것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이 시를 읽자마자 일단 무작정 이름 지어주기를 시작해 봤습니다.
당장 지금 이 방송을 하는 시간에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요? 네. 여러분에게 제 사랑을 드리는 시간 이라고 정하겠습니다.
이제 제 가족들, 이웃, 친구들 뿐만 아니라, 매 시간들, 가는 장소들마다 특별한 이름을 지어줄려고 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네요.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당신"이라구요. ㅎㅎ
저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실래요? 음, 지금 떠오르는 이름은 "별헤는 밤"입니다. 그럼 다음 방송부터는 "안녕하세요. 별헤는 밤 입니다" 라고 소개할게요.

이렇게 유쾌한 시간이 다 지나갔네요. 여러분과 맺은 소중한 인연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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