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가 있는 마을

첫마음



얼마 전 설날이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떡국은 드셨는지, 고향에 내려가느라 밀린 차 속에서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독일에 있어서 설날을 제대로 보내지는 못했지만, 트위터에서 친구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부분 행복하게 보내셨겠지만, 설날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아픈 사연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말고도 설날 당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죠. 한 해의 시작에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올해의 마지막은 아름답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함께 감상해 보도록 할게요.
첫마음
박노해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마침 지금이 겨울이라 밖에 가면 쉽게 겨울나무를 볼 수 있죠. 여러분은 겨울나무를 볼 때 무엇을 느끼시나요? 나뭇잎이 다 떨어져 보기 흉한 모습, 아니면 흰눈이 가지가지 쌓인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질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겨울나무를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는데요.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란 시를 읊으면서 겨울나무에 순수와 사랑,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겨울나무가 순수하고 사랑스럽냐구요?

박노해 시인은 먼저 겨울나무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죠.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
자신의 열매와 나뭇잎, 모든 것을 다 바친 채 헐겁고 가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
저는 이 구절을 들은 순간, 예수님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큰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가시나무 면류관을 쓴 채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아낌없이 주었지만, 세상은 그 분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침을 뱉었죠.
헐벗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박히셨지만, 도리어 그 모습은 어떠한 가식도 없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겨울나무와 같이 보기 싫은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르죠.
세상은 그를 똥처럼 생각하며 피해다닐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진정으로 헌신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겨울나무는 우리 사람의 인생을 연상케도 합니다.
아무리 무성한 나뭇잎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나무도 결국 겨울이 되면 헐벗은 모습이 되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행복해 보이던 사람도 결국 그 속에는 부끄러워 하는 마음, 아픔과 상처, 그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겨울나무처럼 그러한 아픔과 비밀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가 있다는 거죠.
나의 거짓, 상처, 부끄러운 모습들이 겉으로 다 드러날 때의 부끄러움은 얼마나 심할까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더러운 때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박노해 시인은 바로 그때야말로 '맑은 빛'을 보게 될 때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악과 상처를 깨닫고 회개할 때야말로 자기 안의 참다운 빛을 보게 된다는 거죠.

그 맑은 빛은 곧 우리의 첫 마음입니다.
우리의 첫 마음은 어땠나요? 저는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가 기억이 안나서 잘 모르겠네요.
대신에 주위의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갓난아기를 보면 정말 티없이 맑고 순수하죠.
그러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바로 우리의 첫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이 표현이 음미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치장과 거짓들을 다 버리고 헐벗은 모습으로 나타난 순간이야말로 우리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겨울나무는 그렇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헐벗은 모습으로 지금도 그렇게 서있네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왠지 나도 겨울나무가 되고 싶어집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화이팅!

※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의 시낭독을 요청해 주신 박성미 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언제든지 사연을 보내주세요. 

'시가 있는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0) 2010.03.08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어  (0) 2010.02.21
담쟁이처럼  (0) 2010.02.08
작은 소망  (0) 2009.06.15
나도 신데렐라맨  (0) 200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