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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진정한 회개와 용서

회개와 용서 (출처: blog.daum.net/phosa)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가서 그대로 말하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금을 도둑질하리이까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니라 

(창세기 44:1-13)


요셉이 형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은 어찌보면 요셉이 형제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셉의 시험은 자신을 버렸던 형들을 용서하기 위함이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기 전에 형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었다. 형들이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용서를 한다면 그것은 참된 화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가 있을 때, 조금도 지체없이 마음으로는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용서하는 말을 하고 화해를 할 때에는 먼저 그의 회개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런 회개함이 없이 화해를 한다면 상대방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랑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다행히 요셉의 형들은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자 베냐민을 버리는 것 대신에 모두 옷을 찢고 자신들 모두 애굽 총리의 종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형들의 태도는 회개하고 변화된 모습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바라보시는 관점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당장 용서하고 복을 주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함이 없이 바로 용서하시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실 수 없다. 회개함이 없이 용서를 받는다면 우리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필시 그러한 잘못을 다시 반복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까지 기다리신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를 지켜보신다. 때때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하였는지 우리를 시험하실 때도 있다. 드디어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요셉이 형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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