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속에서

믿는 자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요즘 제 일상은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연구실에서 출근하면 그저 멍하니 컴퓨터만 바라보고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책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집중도 잘 되지 않구요.
일하다가 지쳐 집에 오면 먼저 소파에 힘없이 앉아있곤 합니다. 힘들게 아이들 보느라 고생한 아내,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는 딸을 배려하기가 참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아빠 놀아줘~"
"응, 그래. 잠깐 아빠 쉬고 있을게. 먼저 놀고 있어."
대충 이렇게 말해버리곤 다시 소파에 눕습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이 귀여워서 "이리 온"하고 웃어보이니, 도리어 울면서 엄마한테 달려갑니다.
'에이~ 젠장. 난 뭐 아빠도 아니로군.'
라고 생각하며 이젠 나를 외면하는 아들에게 삐집니다. 이래저래 자꾸 사소한 일에 치이고 예민해 하는 내 모습에 내가 왜 이런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무언가 마음에 충만함, 평안이 없고 공허감, 불안감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불신자들보다 더 공허하고 불안하니 정말 내가 믿기라도 하는걸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자책감마저 들더군요.

고등학교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대입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일로 한동안 큰 슬럼프에 빠졌었습니다.
슬럼프는 한동안 지속되었는데, 당시 불신자였던 저는 원효대사가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세상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는 일화를 마음 속에 새기며 이를 극복했습니다. 
비록 불교의 가르침이긴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에도 부합하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성경이야말로 "일체유심조"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우선, 예수를 참되게 믿으면 과거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사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성령 - 하나님의 영이시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니 나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나를 새사람으로 바꿔주시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했다고 해야 할까요.



믿음의 기도 (출처: 예미사)



믿음은 성령님이 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는지요.

"하나님! 내 마음 바꿔주세요!"라고 기도하기 보다
"하나님! 내 마음 지금 당장 바꾸겠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오실 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참다운 믿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고백하게 되겠지요.
"하나님! 내 마음 바꾸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오셨습니다. 저는 기쁨과 평안에 넘칩니다!"
이처럼 성경은 기쁨과 평안은 수행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오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마가복음 9:23

세상 사람들도 신념을 갖고 하면 큰 일을 이루곤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장 오늘부터 내 마음 하나 바꾸어야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제 저는 성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습니다.
기쁨과 평안에 넘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내 마음 하나 바꾸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정진하렵니다.


'일상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으른 믿음  (1) 2013.09.09
좁은 문으로  (1) 2013.02.05
'나는 가수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0) 2013.02.05
전도지 돌리던 할머니  (0) 2012.06.24
불효했던 나날들을 뉘우치며  (0) 2012.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