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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느헤미야서 묵상] 무너진 마음의 성전을 재건하라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를 벗어나 모세를 따라 홍해로 향하던 유대 민족의 대열에 끼어있던 나를 상상해 본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따라가면 이집트에서 더 이상 종살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모세의 말에 얼떨결에 따라 나섰다. 앞사람 걸음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터벅터벅 걷는다. 땀을 닦다가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니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이 보인다. 덜컥 겁이 나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거야. 우리는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거야’

라고 구태의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모세가 ‘어서 나를 따라 걸으시오’라고 하는 말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힘들어요. 쉬엄쉬엄 갑시다.’

‘우리는 부지런하게 걸어야 합니다. 지금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나의 말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오.’

모세의 재촉에도 배가 고파 여기저기 보이는 야자 나무의 열매들을 따먹으며 게으름을 피운다. 사실은 긴장감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서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 내가 과연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집트 군사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올수록 두려움과 긴장은 더욱 높아만 간다. 그런데도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지기만 한다. 게다가 저 멀리 홍해가 보인다.

‘저 홍해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뒤에선 군사들이 쫓아오는데, 모세라는 인간은 왜 우리를 저런 진퇴양난의 위기로 몰고 간단 말인가?’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일까? 나는 모세의 말에 따르기는 커녕, 걸음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아 음식과 여자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은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테니. 다시 잠깐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 이집트 군사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로 코 앞에 다가와 있다. 더욱 절망감에 빠져 이젠 모세를 따라 가는 것조차도 포기하고 있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 곧 죽을텐데…’

이것이 지난 며칠 동안 나의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툭하면 야근하기 일쑤였지만 직장 일에서의 성과는 미미했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한은 다가오는데 나의 발걸음은 도리어 느려졌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에 열심인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만 짓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았고 매일 지친 발걸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무미건조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사단의 결박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나의 모습.

 

 

무너져 버린 나의 모습에 절규하다가 성경을 펴 들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며칠 동안 통곡하며 슬피 울었다. 마치 나의 상황 같았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은 사단에 포로로 끌려간 사이 온통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의 정신과 육체와 비슷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 1:6~9)

느헤미야의 이 기도가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아무리 위기에 있을지라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의이 기도는 내가 즐겨 읽던 성구인 이사야서 말씀을 연상케 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1,18-19,25)

내 마음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같았다. 유다 사람들의 범죄로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듯, 나 역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범죄함으로 마음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얼마나 잘 믿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중에 특별히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얼마나 나의 삶이 희망에 넘치겠는가! 나는 온 우주에서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주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한 나는 그 어떠한 것도 두려울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기에, 아무리 쓰러졌더라도 이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무너진 내 마음의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을 내 마음으로부터 모두 몰아내야 한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기회를 주셨다. 왕의 시종을 들던 그가 “유다에 성을 재건하도록 보내달라”고 왕에게 청하자 왕이 흔쾌히 수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재까지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느헤미야 2:8)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그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느헤미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듣던 대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 2:17~20)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이 예루살렘 성의 재건에 착수하였을 때, 그들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외부에서 조롱하고 방해하는 사람일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적들이 가장 무섭다. 사단들은 교묘하게 내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유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사람들이 조롱하였을 때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줄 굳게 믿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선포하였다. 나에게도 이러한 선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형통케 하시리니 나는 하나님께 영원히 순종할 것입니다”라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여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단지 선포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순종의 노력을 하였다는 것이다. 폐허에서 서로를 격려해 가며 벽을 쌓고 집을 건축하는 장면은 상상만해도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