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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사랑은 인생의 참된 즐거움

사랑의 손 (출처: 대구동신교회)


□ 오늘의 말씀은 전도서 11:1~12:1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말년에 죽음을 앞두고 삶을 뒤돌아보는 자서전적인 고백록으로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좋은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생의 참된 즐거움이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땅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투자하는데 익숙합니다.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런저런 보양식을 먹는 반면, 이웃에게 투자하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이 땅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그러한 투자가 결국 헛되다는 것입니다. 보험과 건강도 예기치 않은 엄청난 재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누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습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수영을 하다가 다리가 마비되어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어느 청년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처칠의 부모는 답례로 그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었고, 그는 훗날 훌륭한 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영국의 수상이 된 처칠은 열병으로 또 다시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어느 생물학자가 자신이 발명한 페니실린 주사로 처칠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 이 생물학자가 바로 어릴 적 처칠을 구해준 청년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이웃을 구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이 온전히 우리 안에 드러나길 원하십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어라.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주어라.
누가 네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어라.
네게 요구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무원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예수님은 누가 우리에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까지 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 리를 가자고 할 때, 첫째는 오 리도 못 가는 사람, 둘째는 정확히 오 리만 가는 사람, 셋째는 십 리를 가는 가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십 리는 가는 사람처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이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다시 전도서로 돌아가 봅시다. 솔로몬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흔하고 흔한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는 등 이런저런 구실을 대면서 지금 이 순간에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지요.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면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며 구름이 끼었다고 기다리면 추수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어떻게 불며 태아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일도 이해할 수가 없다.
너는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씨를 뿌려라. 이것이 잘 자랄지 저것이 잘 자랄지 아니면 둘 다 잘 자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초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우리가 환경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너는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씨를 뿌려라"는 말씀은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열매맺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영국의 사회비평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노력에 대한 가장 값진 보석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빛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상 인생을 즐겁게 살아라.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음의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라. 이 세상에는 기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청년이여, 젊음을 마음껏 즐겨라. 아직 젊었다는 것을 기뻐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근심과 고통을 제거하라. 젊음도 덧없이 지나가고 만다.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솔로몬은 항상 죽음의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며 오늘의 삶을 즐겁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쾌락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바라보는 것", 즉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근심과 고통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특효약입니다. 반면, 그저 방종하여 멋대로 살게 되면 훗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주님! 그저 해야 할 일만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여 열매맺는 삶,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21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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