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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절망아 안녕,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다윗 (출처: Naver Blog 사이버 사랑행복나눔 캠페인)



□ 오늘의 말씀은 시편 42장입니다.

시편 42장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낙심과 절망적인 심정을 하나님께 고백한 글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때 시기, 질투, 교만, 음란, 두려움 같은 여러 무기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입니다. 낙심이 깊어지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시편 42:3,10)

다윗은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롱에 크게 낙담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낙심의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엘리야도 바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이세벨이 사신을 보내 "너도 내가 죽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에 엘리야의 낙심이 깊어져 결국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토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곳에 있는 어느 굴에 들어가 그 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여, 나는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와 맺은 계약을 어기고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고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들은 나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열왕기상 19:9~10)

이처럼 말은 멀리서도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덕을 세우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나의 믿음과 신앙을 무너뜨리는 소리에 귀를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42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영혼', '나' 등과 같은 나를 지칭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가 낙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내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도 다윗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련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랜 광야생활에 지친 백성들로부터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이 들끓자, 모세는 하나님께 "어찌 저 백성을 내게 맡기셨나이까. 차라리 저를 죽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모든 백성이 자기들의 천막 문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여호와께서 몹시 노하시므로 모세가 괴로워하다가
여호와께 이렇게 말하였다. “어째서 주의 종에게 이런 괴로움을 주십니까? 어째서 내가 주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지 않으시고 이 백성의 짐을 나에게 지우셨습니까?
그들이 나의 자녀들입니까? 내가 그들의 아버지라도 됩니까? 어째서 나에게 유모가 젖 먹는 아기를 품듯 이 백성을 품고 그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이 모든 백성이 먹을 고기를 내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이 백성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거워 나 혼자서는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길입니다!”
(민수기 11:10~15)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믿음이 흔들리곤 하였지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고요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바로 곁에 계신데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두려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닌 능력의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날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군중을 남겨 두고 예수님
이 타신 배로 함께 떠났고 다른 배들도 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폭풍이 휘몰아치고 파도가 덮쳐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의 뒷 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하고 소리쳤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이 멎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4:35~40)

모택동 통치시절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는 참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목사님이 공안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예수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영적인 고통속에 하루하루를 보며 날마다 두통에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힌 팜플렛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내가 베드로입니다. 날 사랑하신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는 다시 공안에 끌려갔고 수십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노인이 되어 출감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에 감옥에서의 삶은 참으로 평안하였습니다."

자, 다시 시편으로 돌아가 봅시다. 다윗은 이처럼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크게 낙심하였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낙심하게 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로써 비참한 상황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이처럼 우리는 찬송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상황에서 자신을 비관하고 낙심할 때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해 주신 큰 미래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을 때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네가 말하고 행한대로 너에게 행하겠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10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러나 거인들이 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큰 두려움에 떨며 통곡을 하였고 급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였고 수십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거인들의 위력에 압도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갔더라면, 그들은 수십년을 허송세월하지 않고 더 일찍 기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 악한 백성이 언제까지 나에게 불평할 것인가? 나는 이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너희는 그들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 말대로 해 주겠다.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불평하였으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나를 원망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약속한 땅에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녀들이 사로잡혀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나는 그들을 인도하여 너희가 거절한 땅으로 들어가 살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불신한 너희 죄 때문에 너희 자녀들은 너희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을 탐지하는 데 소요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너희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거절한 결과가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분명히 말하지만 함께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백성에게 내가 말한 것을 반드시 행하겠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다 죽어 없어질 것이다.”
(민수기 14:26~35)

이와 달리,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선두에 선 것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그들을 이끌었고 결국 그 단단해보이던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아갔기에,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7명의 제사장들이 각자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법궤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무장한 선두 부대는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 앞에 서고 후방 부대는 법궤 뒤에서 행군했으며 나팔 소리는 계속 울려퍼졌다.
(여호수아 6:8~9)

다윗처럼, 곤궁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내가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 피터슨(John Peterson)의 유명한 고백으로 오늘 하루를 주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시작합시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 다니, 「설교 - 너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12일 새벽예배 설교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