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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큐티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던 여인



예수님의 발에 향유붓는 여인 (출처: Christian Today)



□ 오늘의 말씀은 요한복음 12:1~11입니다.

예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겨 드렸던 여인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에 초대를 받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권능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인물로, 그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사로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생활 자체만으로도 간증이 되고, 주님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거기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보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일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9-11)

나사로에게는 두 딸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었는데, 마르다는 언제나 예수님이 오실 때마다 말씀을 듣곤 하는 마리아와 갈등을 빚곤 했습니다. 이 날도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다가가 비싼 향유를 깨뜨려 모두 부어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털로 씻겨 드리고 있습니다. 향유는 300데나리온, 즉 당시 노동자의 1년 임금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발 씻는 것도 노예들이나 하는 일인데, 여자에게 소중한 비싼 향유와 머리털로 발을 씻겨 드림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 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이 여자의 일을 기록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은 손님들과 자리를 같이하였다.
그때 마리아가 아주 값진 1나아드 향유 약 2300그램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자 온 집 안이 향유 냄새로 가득 찼다.
(요한복음 2~3)

그런데 이 일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유다는 왜 그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고 낭비하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말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빼돌리려는 불순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여 그와 같이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 중 하나이며 예수님을 팔아 넘길 가룟 유다가 이것을 보고
“왜 이 향유를 3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소?” 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는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 있는 돈을 자주 훔쳐 내는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버려 두어라. 그녀가 이 향유를 간직해 둔 것은 내 장례를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나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4~8)

마리아는 성숙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신앙의 초기엔 기도의 응답을 잘 받지만,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는 것만 생각하다가 자라서 효도하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마리아와 같이 아낌없이 드리게 됩니다. 자신의 건강, 젊음, 기회, 시간, 물질 등 주님을 위해 무언가 포기하면서도 드리고 섬기는 것 자체로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자식을 신에게 드리는 악습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가 자식을 신에게 드리려고 강으로 가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가는데, 한 아이는 잘 생기고 건강한 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시각장애아였습니다. 당연히 시각장애아를 드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생기고 건강한 아이를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는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여인에게 물으니, "당신의 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신은 최고의 것을 받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비록 그 여인이 잘못된 것을 믿고 있지만, 우리의 섬김도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리아가 보여 준 것처럼 성숙한 믿음으로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독일 할레 한인교회 김현중 목사의 2011년 9월 2일 새벽기도 설교말씀입니다.